Every little thing2014/07/08 22:09

제가 매일 보고 듣는 뉴스는 JTBC 뉴스9과 CBS 뉴스쇼입니다. 그외 시사프로들 중엔 가끔 정관용 교수가 진행하는 CBS 시사자키를 듣습니다. 뉴스쇼나 시사자키에서 이미 세월호 사건은 뒤로 밀려났는데, 그 두 프로가 그럴 정도면 다른 프로들이 어쩌고 있을지는 뻔해보입니다. 


그런데 뉴스9은 아직도 세월호 이슈가 탑뉴스입니다. 그러다보니 손석희 앵커는 매일 왜 그래야하는지를 이야기하면서 뉴스를 시작합니다. JTBC 에서 연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단독취재 결과들을 내면서 다른 언론들이 그 뉴스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후속보도를 조금씩 할 수밖에 없도록 견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JTBC 보도국 손석희 사장이 그 건조한 목소리 톤과는 달리 내일 죽더라도 오늘 할 말은 해야겠다는 고집으로 뉴스를 지휘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고집스러운 보도 이면에 얼마나 큰 압력들과 실질적인 문제들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을지도 상상해보게 됩니다. JTBC 보도국은 손석희 사장이 꺽이고 나면 바로 그 다음날부터 그냥 "종편뉴스"가 되버릴 게 뻔할만큼 손석희 사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지금 전국을 누비고 있는 김관기자나 여전히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서복현기자등 여러 기자들이 있지만 거목을 대신할 거라고 기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죠. 


겁도 없이 세월호 국정조사를 정쟁으로 몰아가는 걸 보면 더이상 세월호를 보고 있는 눈이 얼을 거란 걸 알게 합니다. 이제 그렇게 세월호를 감춰나가야 할 마당에 탑뉴스로 다루고 있는 JTBC가 눈에 가시 같을 겁니다. 그러니 이제껏 꾸욱 눌러보길 계속해오던 그들은 한번에 힘을 줘서 부러뜨려버리고 싶을 겁니다. 남은 11명은 이제 잊혀질만하다는 거죠.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그렇습니다. 세월호 보도를 더이상 보고 싶지 않아하는 시청자들 또한 "그들" 입니다.


최근 제가 부정적인 예측들을 하면 다행스럽게도 틀리길 두어번 반복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또한번 예측해봅니다. 손석희 사장은 부러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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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14/04/28 21:26

이글은 대중문화의견가 서정민갑님께서 IZM에 기고하신 "우리의 취향은 충분한 기회를 갖고 있는가?" 에 관한 트랙백입니다.


대중음악의견가 서정민갑은 다양한 취향을 경험해볼 수 없는 대중음악의 문화적 사회적 제약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 이것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논쟁으로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댄스 일변도로 진화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여러차례 있어왔던 것이기도 하다. 수년전 한 비평가는 대중의 음악 또는 문화 소비과정과 사회적 문제인 스펙쌓기를 연관지어 좀 더 깊은 논의를 시도했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그러한 문제 제기 또는 논쟁은 그 자체가 전면에 드러나기 보다는 사회 분위기를 이야기 하기 위해 한두 문장정도로 언급되어지는 "현실인식"에 머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말인 즉 이미 저변에는 그에 대한 문제인식과 공감대가 형성되어있지만 변화의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한다는 것인데, 나는 그것이 두가지 원인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변화의 수혜자가 대중 속의 일부 소수의 사람들이인데다, 알고보면 그들 스스로는 변화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가지 이유는 취향의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지원 또는 제약 타파의 주장들의 지향점이 명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이후의 글에서 그 두가지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이 문제를 구체적인 현안과 연관지어 보하고자 한다.


서정민갑의 대중의 음악에 대한 취향 형성 과정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시작하자면, 나는 다양성에 대한 기회가 풍부하건 모자라건 할로우잰을 좋아하는 취향을 갖게 되는 데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서정민갑의 글에서 그랬듯 여기서도 할로우잰은 "마니아적 취향" 을 의미하는 대명사로 사용하겠다.) 그의 말처럼 태어날 때부터 할로우잰을 만날 운명이 정해진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 연애를 할 때 외모만 보고 막연하게 찍어 쫓아가다가 거듭되는 직간접 경험의 과정을 통해 상대에 대한 취향을 갖게 되고 이상형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취향의 발전과정을 따라가다보면 어떤 사람이 YG 나 JYP 옆에 살고있을지라도 어떤 시점부터는 할로우잰을 만나기 위해 좁고 어두운 공연장을 찾게 될 운명에 놓이게 된다. 그런 예측되는 운명은 아주 이르면 비틀즈에서 시작될 수도 있고 혹은 레드제플린이나 딥퍼플에서 시작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보면 우리 사회는 서정민갑의 인식과 다르게 이미 비틀즈과 딥퍼플을 흔하게 들을만한 풍부한 기회가 열려있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떤 이가 할로우잰을 만나게 될 운명에 놓이려면 비틀즈나 레드제플린보다 훨씬 멀리까지 가야 한다. 그러므로 서정민갑이 제기한 문제는 레드제플린과 할로우잰 사이에 가는 길이 아무 때나 TV틀면 나오는 뮤지션들만큼 가깝진 않더라도 산넘고 물건너 가야 하는 어려운 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로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혹은 다양한 취향을 지금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 누군가는 비틀즈 따위를 거칠 필요 없이 그 중간 어디쯤이거나 혹은 한로우잰 공연장 바로 앞에 툭 하고 떨궈질 수도 있는 거다. 그렇다면 할로우잰을 좋아할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질 거라고 기대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대중음악 소비자들의 마니아적 성향은 사회적 다양성에 의해 부여된 기회보다는 개인의 취향에 대한 주관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주체적인 성격과 그 대상을 찾아내려는 노력과 결부되어있다. 마니아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기 때문에 사회의 다양한 기회부여로 마니아들이 길러질 수 있다 한들 할로우잰을 좋아할 사람이 얼마나 늘어나게 될런지 의심스럽다. 어쩌면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기회가 사람들의 주체적인 성격을 길러낼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그래서 결국 돌아돌아 할로우잰 애호가들도 늘어나게 될 것도 같지만, 그건 너무 불확실한 이야기다.


덧붙여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게 되는데, 과연 서정민갑이 주장한 것처럼 이 사회가 다양한 취향의 기회를 제공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을 때 그 수혜자는 누가 될까? 지금까지 할로우잰을 접해보지도 못한 채 자신의 취향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사람들이라고 해야겠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런 취향에 대한 주관적 판단을 할 능력을(?) 갖은 사람들이라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할로우잰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럼 반대로 이미 할로우잰 공연장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수혜자일 수 있을까? 이미 할로우잰을 좋아하는 그들에게 혹시 공연장에 함께 갈 친구가 필요해서라도 서정민갑의 주장에 목소리를 더해줄런지 의문이다. 그동안 수차례 이야기되었음에도 이 문제가 현실 인식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모두 알고 있지만 바꿀 필요를 못느끼는 거다.


한편 나는 이 문제가 사회 구성원들 중에 절대 다수인 소비자들을 향해 두루뭉술 이야기되어져왔다고 지적하고 싶다. 그것이 또한 다양성에 대한 문제를 현실인식 수준에 머물게 했던 거라는, 문제 제기 자체에 대한 이야기다. 앞으로는 직접적으로 음악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다양성문제"보다도 구체적인 주장과 요구로 이어졌으면 한다. 그 생산자라 함은 뮤지션들은 물론이고 직접적으로 기회를 제공하는 공연장이나 음반사 또는 유통업체 종사자들까지 포함한다. 그런 주장이 귀달린 사람들 모두에게 뭉뚱그려져 말해져왔기 때문에, 그리고 시장논리가 주된 잣대인 우리 사회에서 소비자의 변화가 공급을 조절하게 된다는 보편적 인식 때문에, 평론가들의 획일성에 대한 그간의 이야기는 결국 소비자들이 변화해야 할 몫인 것처럼 인식되어지곤 했던 게 아닐지 돌아보기도 해야 할 거다.


다시 말하지만 다양성에 대한 요구는 음악 소비자가 아닌 오로지 생산자들을 향한 문제로 지향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변화의 명분도 소비자인 대중을 명분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음악 생산자로 하는 게 더 정확하고 솔직하다 하겠다. 뮤지션들이 대중에게 자신의 음악을 알릴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현실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격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당면한 문제인데, 단순히 다양성의 문제로 뭉뚱그려서 이야기해서는 그런 구체적인 문제들에 미치진 못하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음악 생산자들을 향한 구체적인 문제를 찾는다면 며칠전 고양문화재단이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 행사를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을 들 수 있겠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서정민갑이 종국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 혹은 그런 주장을 하도록 만든 계기또한 거기 있었잖을까 짐작해본다. 그리고 고양문화재단가 만들어낸 문제는 대중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기회를 제공하길 포기하면서 그 다양성을 주도하는 특정 뮤지션들에게서 자신의 음악을 알릴 기회를 빼앗았고 그에 따라 경재적인 손해도 입혔다는 것이다. 문제인식에서 그칠 게 뻔한 상투적인 주장을 반복하기보다 이렇게 더 구체적인 문제와 그것의 피해에 대해 명확하게 꼬집어 이야기해야 한다는 말을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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