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ghth day of week2004/02/14 21:14

옛날에 PC통신이라고 불리던 사설 BBS 가 있었다. 처음엔 KETEL 이었던 HITEL, 천리안, 비교적 늦게 시작해서 물이 좋았던 나우누리... 내가 그런 것들을 시작했을 때 정붙였던 모임이 있었는데, 모임 이름은 알 것 없고 일단은 그냥 그 모임이라고 부르자.

난 그곳에 푹 빠져서 매일 매일 밤 늦도록 혹은 날이 밝도록 거기서 형들, 누나들, 친구들과 채팅을 하면서 보냈다. 사람을 만나기보다 모니터 앞에서 지내기에 익숙해져버린 나는 친한 친구들이 군대를 갔을 땐 그 모임만이 내가 교류하는 인간관계의 전부가 되버리기도 했었다. 그사람들은 모르지만 내겐 그랬던 것 같다. 지금보다도 훨씬 소심했던 시절에 말이다, 난 그곳에 금방 정이 들었고 또 그만큼 쉽게 상처받기도 하면서 지냈었다.

얼마전에, 아주 오랜 만에 그 모임의 온라인 게시판을 다시 찾았다. 우리가 보통 격는 그런 익명성과 때가 되면 와해되버리는 그런 온라인 모임들과는 달리 정으로 뭉쳤던 그사람들이, 몇 해가 지나고 하이텔이 인터넷의 아주 작은 부분으로 전락해버렸음에도, 아직까지 그곳에 모여있다는 것에 놀랐다기 보다는 반가웠다.

그리고 오프모임에 한 번 나가봤다. 모니터를 통해서만 봤던 그사람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한 사람밖에 안나왔고 그나마 올드회원도 아니었다. 얼마전에 사진을 봤는데 모두들 낯선 사람들 뿐이었다.

마주쳐도 내가 널 알아본다는 것이 중요한 거다. 서로를 안다는 것보다 내가 널 알아본다는 것이 더 중요한 거다. 이 넓은 세상에서 우리는 분명 몇번이나 마주치게 된다. 그것이 우연이라서 신기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연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은 내가 널 알아보고 불렀기 때문이다.

널 알아봤다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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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