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2012/01/19 18:46
무관심 속의 진실로 퍼져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왜곡되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있다. 인간이 너무 쉽게 반복하는 "착각" 이라는 주제는 언제나 나의 관심을 끌어왔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흥미가 갖기 시작한 것도 그무렵이었다. 그러나 남들에게 알려줄 수 있을 만큼의 관심을 쏟기에 팔레스타인은 거리가 멀기만 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와 관련된 아무런 동기부여가 없었다. 만약 문화적 흥미라도 갖게 됐더라면, 어쩌면 난 지금쯤 그곳에 여행도 가봤겠고, 그곳 문제에 대해 사람들을 일깨워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바탕으로.

팔레스타인평화연대라는 단체가 있다. 최근 그들이 운영하는 "올리브나무" 라는 웹진에서 흥미를 끄는 소재가 등장했는데, 이스라엘의 Red sea jazz festival 에서 공연할 계획인 재즈뮤지션 나윤선에게 공연에 대해 문화적 보이콧을 촉구하는 공개 편지였다.("이스라엘에서 공연을 계획하신 나윤선씨께") 재즈는 내가 오랜 시간동안 사랑을 품어온 대상이었다. 재즈는 적지 않은 음반컬랙션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종사자를 제외한 애호가 중에 국내에서 가장 많은 재즈공연을 관람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강조하고 싶은 건 나의 관심의 방향이 해외를 통해 브랜딩되어 들어오는 뮤지션만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찾기 어려운 다양한 국내 재즈 뮤지션들에게도 향해있다는 데 있다. 나에게 재즈란 흥미를 넘어선 사랑이고, 사랑하기 때문에 음반을 사고, 공연장을 찾고, 유명세에 연연하지 않은 채 국산(?)을 소외시키지 않는 등의 해야 할 일들을 기꺼이 하고 싶은 대상이란 말이다. 그렇게 재즈를 사랑해온 사람으로써, 동시에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난 사람으로써,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공개편지를 처음 접했을 때 그 내용이 그럴싸하게 읽혔다. 하지만 한켠에 공감할 수 없는 다름이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여러번 떠올려 생각한 끝에 그 다름이란 바로 "사랑"임을 알았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게 사랑이 있을까? 사실 그런 의문을 문장으로 만들지 않았을 뿐, 이 단체를 알게된 시점부터 품고있던 의구심이었다.

매번 올림픽이나 월드컵, 그밖의 국제적 스포츠 행사들을 볼때마다 대중들로부터 느낄 수 있는 뻔뻔함, 비겁함, 잔인함 같은 게 있었다. 국내 축구리그 경기에는 관심갖지 않았던 사람들이 국가대표의 경기를 보면서는 실력을 질책하고 투혼을 강요하곤한다. 올림픽 메달 효자종목들 중에는 비인기종목이 상당수 있다는 것 자체로 사람들의 무관심을 탓하진 않겠다. 그러나 그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결승전에서 은메달을 땄을 때 국민들이 보이는 실망을 보면서 참 잔인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는 건 나만이 아닐꺼다. 그런 관점에서 문화적 관심 또는 애정에 대해 생각해보자. 나윤선의 음악을 좋아하고, 재즈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이미 계약되어있는 이스라엘 공연 스케쥴에 대해 문화적 보이콧을 하길 기대하는 것과, 단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옳고 그름을 논리로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대조적인 일이다. 그건 마치 나는 네가 운동경기하는 걸 지금 처음 봤음에도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우승을 통해 국위선양하길 강요한 것도 당연한 일이며, 네가 실망시켰기 때문에 그 결과가 너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이미 우리에게 널리 퍼진 그런 비겁함과 다를 게 없다. 우리가 문화적인 문제를 이야기할 때, 사랑을 바탕으로 한 어떤 기대가 있을 수는 있을지언정 메달을 땄기 때문에 사랑해주겠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앞서말한 비겁함이 첫번째 이유고, 또한 문화를 사랑할 줄 모르는 자들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올리브나무에서 지난 18일에 번역게시한 "이스라엘에서 공연을 취소한 Tuba Skinny의 공식입장문"은 유치한 짓이었다. 들어본 적도 없는 Tuba Skinny, 그들의 정의로운 보이콧, 그제서야 들어보게 된 그들의 음악에 대한 호감으로 연결된다는 싸구려 문화의식이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게 정의감이 있을지언정 사랑은 있는 걸까? 나윤선에게 문화적 보이콧을 요구하는 것은 정의감인가 사랑인가? 만약 사랑이 있다면 그건 가까운 우리의 뮤지션을 향한 사랑이기보다 멀리 이국땅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에 가까운 사랑일 것이다. 사실 이부분은 처음 이 단체를 알게 됐을 때부터 시작된 의문으로, 가까이서 사랑할 수많은 대상들을 넘어 그 멀리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건 어떤 것일까에 대한 인식이다. 그러니 사랑은 던져버리자. 단지 그들의 일련의 활동들이 정의를 지키기 위한 행동들이라면, 정도를 넘어서 대중을 선동하는 식의 강요를 유도해서는 안된다. 문화인으로써 사랑 받기도 어려운 이땅의 뮤지션에게 대중들이 엉뚱한 이유로 돌을 던지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건 정의를 명분으로 자행하는 또다른 부정이다.

지난 16일에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사무실에서는 나윤선의 문화적 보이콧에 대한 이야기마당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Tuba Skinny 의 보이콧 입장에 대해 웹진에 게시한 것을 보면 슬프게도 그들은 정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느라 문화적인 사랑은 외면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난 그런 활동이 앞으로도 설득력을 갖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 그건 땡깡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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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2/01/06 14:09
나같은 사람이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우습게 볼 일인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내 주변 사람들보다 조금 더 관심을 갖고서 주변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올해 총선은 대선보다 더 중요한 이벤트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희망적인 구도가 거기서 결정되버릴테니까. 

그 희망적인 전개는 이런 거다.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대패하게 되면 당 쇄신에 실패한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대선후보일 수가 없게 된다. 더구나 그렇게까지 망가진 한나라당이 더이상 뭉쳐서 시국을 버텨내며 대선을 준비할 이유가 없어진다. 한나라당을 뒷배 삼아 국회의원이 되는 데 실패했으니 각자 살 길을 찾아 탈당을 하던가 다시 헤쳐모여하는 식이 될테니까. 이건 미리 예상하고 있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일이다. 이미 천막당사도 한 번 했던 역사가 있는데 또 그럴꺼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

그 상황이 되면 야권 후보들은 누가 됐건 여당과 그를 추종하는 보수의 단결에 영향받지 않고서 다양한 대안이 되어 선택받을 수 있게 되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대선이 치뤄지는 게 가장 희망적인 전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총선에서 야권이 패하거나 애매하게 이겼다면 대선은 오로지 한가지, 정권을 바꾸기 위한 선택만 가능할 뿐이고 그 자체로는 옳은 선택이 될 가능성이 낮다. 언제나처럼 "대안이 없는 상황"으로 느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연결되어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해왔기 때문에 결국에 "정권 교체"만을 위한 선거가 반복되면서 이렇다할 대안을 만들지도 선택하지도 못했던 것 아닐까? 그런데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단일 야권후보를 만들 것 같지 않기 때문에, 결국 표는 분산되고 정권교체 자체만을 목표로 하는 일조차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 된다면 2012년에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결말이 된다.

한번 더 나가 생각해보면, 현재의 민주통합당의 태도를 봤을 때 이미 이런 판세를 읽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 양보해가며 당 차원에서 야권을 통합할 필요도 없고, 국회에 불출석해가며 더이상 한나라당에 대항할 필요도 없이 정권교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국민들에게 각인시켰으며, 혹시 부족하다면 앞으로 한나라당이 망가지면서, 또는 떨거지 야당들이 마져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그들은 이번 총선에 주력하여 근소한 차이로라도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기에 몰두해있을 거다. 그러다 대선 때에 가서 나머지 야당들에게 "정권교체"를 볼모로 단일후보 협상을 시도하는 길이 그들에게 정권을 가져오는 데 가장 확실한 카드가 된다. 이번에 유례 없었던 국민경선을 펼치는 것 또한 "정권교체"를 볼모로 단일후보 협상을 이끌어내는 시점에서 국민적 지지를 얻어 떨거지 야당을 압박하기 위한 포석이 될 거다.

같은 논리로 한나라당을 지게 하기 위한 총선이 되서도 안된다. 하지만 그들의 참패는 결국 국민적 관심으로 이뤄질 일이므로, 한나라당의 참패를 호소하려는 게 아니라 2012년 선거에 유례 없는 관심과 토론이 주변에서 많이 일기를 바란다.

그러니 가장 좋은 건, 4월 총선에서 범국민적 관심으로 한나라당이 참패하는 거다. 그러면 민주통합당의 대선 후보로 누군가 나서고, 통합진보당에서 문재인을 모셔다 세우고, 안철수나 조국 교수가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해도, 국민들은 여러 "가능성 있는" 대안들을 비교해서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선거란 선출을 목적으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벌이는 "캠페인"의 내용도 중요하며, 다양한 후보들의 캠페인을 통해 국민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서로 고민할 수 있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거기까지는 먼 이야기라 할지라도 정권 교체를 해야만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표를 던져야 하는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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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1/12/15 14:27
어제 비슷한 듯 서로 많이 다른 친구들과 모여 이야길 나눴다. 이야기 하는 내내 이 사회가 물류의 유통이 지배하고 있어 병들고 있다는 평소의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어 불편했다. 그런 이야길 꺼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건, 우리들 중에서만이 아니라 이 사회가 감자를 유통시키려는 사람만 많아지고, 하고싶어 감자를 키우려는 사람은 없어지고 있기 때문. 돈이란 것은 땅에서 자라나는 가치에 대한 대한 지불 수단이기보다 허공에서 부풀려진 공허한 것이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일단 더 많이 갖어야 하는 욕심을 품게 되나보다. 우리가 감자를 키운다면 그리 돈이 많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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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1/10/31 14:23
어느날에 문득 담배를 참기 시작하고서 5년이 지나도록 담배를 끊었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나중에 담배 연기가 싫어지고 그 냄새가 몸에 밴 사람이 불편해질 정도가 되어서도 나 스스로조차 담배를 끊었다는 자신이 서질 않았다. 언젠가 고속도로에서 추돌사고가 났을 때 한 개피 담배가 그렇게나 간절했던 걸 꾹 참아낸 적이 있었는데, 그걸 간신히 참아낸 데 대한 안도와 함께 담배는 여전히 참아야 하는 존재일 뿐이란 생각은 더 분명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당시엔 교통사고의 충격보다 컸지만 지나서는 유치하기 그지 없는, 누구나 뻔히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상투적인 이유로 나는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건 시간이 아니라 어쩌면 담배연기였는지도 모른다. 직접적인 상관관계야 없겠지. 하지만 나 스스로가 담배가 되어갈 수록 이걸 다시 물게 만든 그 순간이 너무나 하찮게 느껴졌으니까. 시간이 지날 수록 다시 헤어나올 수 있을까 걱정스럽게 만드는 건 담배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마는 그런 순간이 아니란 걸 알게 해줬으니까 말이다.

처음 그랬을 때처럼 이번에도 큰 결심 없이 문득 찾아온 어느날이 있었다. Beer Lao 를 핑계삼아 떨어지지 않던 발걸음을 눌러앉힌 곳, 라오스의 국경에서였다. 각자 세 병째 비우던 중 한참동안 담배를 끊었던 친구는 내게 담배 한 개피를 달라고 했다. 내게 단 두 개피만 남아있는 걸 보고 그는 바로 사양했지만, 그 순간이 오래전에 문득 찾아왔었던 어느날과 같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게 됐다. 그렇게 하나씩 나눠 피운 후로 지금까지 난 잘 참고 있다. 이제 지나고 나서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는 걸 알게 된 나는, 그렇게 훈련된 나는 조금 더 자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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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라오스
A Day in the Life2011/02/15 15:07
이 사회에서 다수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먹고 살건 

비굴하게 먹고 살기는 마찬가지거나 예술가 아닌 자들이 더할 겁니다.

특히 그 삶의 비굴함이 은행 대출금이나 사교육비 마련 때문이라면 

차라리 시대가 낳은 보편적 인간성에 묻어갈 수나 있겠지만,

음악 복사해서 듣고, 영화 다운받아 보고, 예술이랑 하등 관계 없는 성공 매뉴얼책만 사보면서,

그러면서 누군가 배고픈 예술가가 죽었는데 누군가 배부른 예술가는 낭만주의나 말한다는 둥 이야기하는 거라면,

그보다 무서운 사람이 또 있을까요? 더욱이 그런 스스로를 자각하지도 못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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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1/01/11 20:16
지금처럼 길에 눈이 많이 쌓이고 있을 때, 

별준비를 못했던 고양이들은 머물 곳을 찾고 있겠지. 

봐둔 곳이 있는 놈들은 이미 들어갔을 꺼고, 

들어갔더니 혹시 누가 차지하고 있더라도 

부디 싸우지 말고 밤을 외롭지 않게 보내렴. 

오늘밤 우리 건물 현관도 열어놓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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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0/09/25 12:21
유혹과 핑계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봤어. 넌 이미 나와 함께 달리면서 앞으로 할 이야기를 내게 들었었단다. 그때 너의 반응은 좀 신경질적이었는데, 어쩌면 그토록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자꾸만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 짜증났을 수도 있었을 꺼야.  아니면 그저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다시 한 번 천천히 생각해봤으면 좋겠구나.

우린 그때 1km 를 6.5분 페이스로 뛰다가 중반 이후부터는 7분을 살짝 넘기는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지. 그래서 결국 10km 를 1시간10분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거고. 그런데 코스 후반부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오르막길을 만나면 걷고 내리막이 시작되면 다시 달리기 시작하곤 했던 걸 너도 봤지? 그 날의 코스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그렇게나 많을 거라고 내가 미리 알고 있었던 건 아니야. 하지만 꽤 많은 날들을 달리면서 보냈기 때문에 후미 그룹에서 그런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게 될 거라는 걸 예상하고는 있었어. 사실 그때문에 너에게 천천히 뛰더라도 절대 걷지 말자고 다짐을 받아뒀던 거란다. 주변에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너에게 커다란 유혹과 핑계로 작용하게 될테니까. 더구나 내 옆에서 열씸히 달려줬으면 하는 친구의 약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거든.

10km 를 1시간 안에 들어오는 그룹에서는 그런 모습을 별로 볼 수가 없어. 그렇게 쉬어가다가는 그 시간 안에 들어올 수가 없거든. 바꿔 말하면 성의껏 준비한 노력보다는 의욕이 더 컸던 사람들 중에서 체력이 그 의욕을 받쳐주지 못하게 되는, 너무 당연히 찾아오게 될 그 시점부터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내리막에 스스로를 의지하게 되는 거야. 너와 함께 달리다가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들을 가리키며 너에게 내가 그렇게 말했었잖아.

"얼마나 삶에 대한 약은 태도니."

넌 짜증을 냈었지. 푸훗.

그렇게 약은 사람들은 출발선에서도 수백의 사람들을 비집고 되도록 앞에 서려고 한단다. 일일히 맞춰보지 않고서도 그렇다고 판단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 내가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렸을 때, 나역시 선두그룹에 들어있는 사람이 아님에도 중반 이후부터는 엄청 많은 사람들을 앞질러가게 되거든. 그렇다는 건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거나 페이스란 것 자체를 모를 만큼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이 나보다 앞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거지. 더 힘차게 뛰어서 앞지를 생각을 하기보다는 시작부터 남들보다 앞에 서서 뛰려고 하는, 이또한 나에게는 자신에게 겸손하지 못한 모습으로 비춰보이기도 해.

사실 단지 하루 기분 좋게 땀을 내고 싶었을 뿐인 그들은 자기가 그렇게 앞섰던 의욕만큼 많은 추월을 당하게 되고, 걷다 뛰다를 반복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도 않았을 꺼야. 또 그렇다한들 그게 비난 받을 일도 아니지. 더구나 그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들어야 할 이유도 없는데, 혹시 너도 내 말을 들으면서 너를 거기 포함시켜넣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던 건 지도 모르겠다. 난 그저 약간 더 진지할 뿐인데, 그런 내게 그들이 어떻다고 평가할 자격은 없는 게 맞아. 그런데 내게 아무런 득이 될 것도 없는 손가락질을 하겠다는 건 아니란다. 그런 사람들과 섞여서 달리는 내가, 그리고 또 네가 가장 크게 얻었으면 하는 한가지가 있을 뿐이야.

내리막길에서 뛰고, 오르막에서 걷는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지켜보게 됐는지 생각나니? 오르막에서 우리가 그들을 앞질렀었는데 내리막에서는 도로 역전당하길 반복했었고, 그래서 낯익은 차림의 사람들이 주변에 계속 보였던 거고 아마도 결국 우리의 골인 기록도 그들보다 나을 게 없었을 꺼야. 우리가 그들을 앞지를 수 있었던 건 오르막에서도 달렸기 때문이고, 그들이 우릴 다시 앞지르게 된 건 내리막에서도 우리가 페이스를 유지했기 때문이란다. 어찌보면 달리다가 걷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분수에 맞는 페이스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야.  

앞에서 내가 그들의 겸손하지 못함과 약았음을 이야길 해놓고도, 결국엔 그들과 추월에 추월을 반복하면서 비슷한 기록의 결과를 냈다면 당연히 이렇게 의문을 갖을 수밖에 없는 거잖아. '우리의 마라톤은 달리나 마나한 일이었던 걸까?' 그렇게 걷고 싶고 쉬고 싶은 유혹을 참아냈고, 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다 그렇게 쉬어가고 있다는 핑계를 물리치면서 달렸는데도, 그렇게 순간, 순간들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보였음에도 그게 약음보다 나을 게 없다라면, 우리가 했던 마라톤과 네가 나와 했던 약속은 큰 의미는 없는 일이 되는 걸까?

사실 내 대답은 결과만 놓고 봤을 때 하나 마나 한 거였다는 것에 가까워. 남들보다 더 진지했던 시간 자체를 즐길 수도 있지만 그래도 결과는 같다는 것이 나에겐 약오르는 일이거든. 그런데 그런 결과에 대한 차이는 다시 또 그 진지함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아주 간단해. 네가 평소에 꾸준히 달렸더라면 추월했던 사람들에게 내리막에서 도로 추월당하는 일은 없었을 꺼야. 남을 이기기 위한 연습은 혹독할지 몰라도, 나의 진지함에 대해 공허해지지 않을 만큼의 훈련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란다. 결국 다시 말하건데, 인생도 마라톤도 출발선에 서서 시작되는 이벤트가 아닌 거야. 이미 우린 달리고 있다는 걸 너도 알잖아. 남을 이겨내기 위해 긴장을 유지하고 혹은 독기를 품고서 뛰는 일들은 난 정말 싫어. 하지만 내가 즐기는 것들을 대할 때, 말하자면 일할 때도, 달릴 때도,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친구인 너를 대할 때도 내리막 같은 상황을 기대하기보다 오르막에서도 멈추지 않겠다는 진지함과 꾸준함, 그게 바로 너와의 마라톤에서 내가 귀하게 얻어낸 마음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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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0/09/22 22:13
추석연휴에 운동을 하려고, 날씨 예보를 봤더라면 챙기지 않았을지도 모를 운동화와 운동복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그저께 고향에 내려왔단다. 그런데 오늘도 어제도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 막상 비내리는 걸 보고 의지가 좀 꺽이긴 했었는데, 오래전 누군가의 질문이 떠오르더구나.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있던 그는 내일 비가 내려도 행사가 열리는 지를 내게 물어왔어. 그가 갸우뚱 했던 대답이 나에게는 너무 당연했기 때문에 잠깐 할 말을 잃었던 기억이 나. 그 어떤 대회도 비 때문에 취소되진 않아. 비는 왠만큼 내려서는 달리기를 방해하지 않거든. 결국 그 생각이 나서 어제도 오늘도 부슬비를 맞으면서 달릴 수 있었단다.

평소에 나의 의지를 꺽는 유혹들이나 핑계들이 너무나 많아. 나 스스로도 그것들을 잘 못 이기는 편인데,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주로 하려고 하는 편이란다. 누군가 의지가 약하다면, 그 말은 의지를 필요로하는 그 일이 그 누군가에게 억지를 써야 할만큼 즐기지 못하는 일이기 때문인지도 몰라. 그러니 지금 의지박약으로 괴로운 사람이 있다면 다른 일을 찾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억지를 써가며 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어려움만큼 보람이 크지도 못할테니까. 하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이고 그럴 가치가 있다면 다른 유혹들 앞에서 강해져야 하고, 핑계를 만들지 말아야 해. 다행히 그 일을 하고싶은 만큼이 다른 유혹들을 이겨내게 도와주기도 하고, 핑계를 만들 필요도 없게 하는 것 같아. 그러니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일들만 하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혹은 나를 후회하게 만들고, 핑계는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하더라. 왜냐하면 핑계는 스스로를 합리화 해버리고 다음번에도 또 반복할 수 있는 선례로 남아서 후회조차도 하지 않는 더 나약한 사람으로 만들거든. 유혹은 외부에서 오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미연에 차단해버릴 수도 있지만, 핑계는 마치 남이 만들어준 상황인 것처럼 말하곤하지만 기실 스스로 만들어낸 자기 합리화인 경우가 많아. 그래서 유혹보다 핑계가 더 위험해.

마라톤같이 시간이 많이 필요로하는 운동은 그 사이에 많은 유혹도 작용하지만, 핑계를 동반한 자기 합리화도 많이 만들어내게 되는 것 같아. 그런데 인생에서 단 한 순간도 우리에게 마라톤을 준비하기 위한 편리한 시간과 상황으로 주어지지 않을 텐데, 그것들의 방해를 이겨내지도 못하면서 우리가 출발선에 서도 되는 걸까? 마라톤은 출발선에 서서 풀리지도 않은 운동화 끈에 조바심을 더해 묶으며 시작되는 게 아니라, 평소에 달릴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데서 시작이 된단다. 흔히들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는 건 인생이 고작 출발선에서부터 시작되는 이벤트 같은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걸 준비해온 훨씬 더 긴 시간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

시간과 장소가 달라져도 땀을 흘린 후에 시원하게 씻어낼 수 있는 상황만 된다면, 비가 약간 오더라도 그게 달리지 못할 핑계가 될 수는 없지. 더구나 그렇게 준비해온 사람이라면 겨우 비 때문에 대회가 취소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비 때문에 대회가 취소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내가 잠시 말문이 막혔던 이유가 바로 그거야.
 
비속에서 달려보지 않고서는 그런 걸 모를 수 있어. 하지만 비가 내릴 때 달려볼 생각도 하지 않고서는 영영 알 수도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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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0/09/20 19:24



배터리를 갈아주면 된다는 건 머리로만 아는 일이었죠.

그래서 오래 멈춰있던 시계였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멈췄던 시간도 다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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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0/09/16 01:33
몰랐겠지만 난 그때 널 끌어안고 싶어졌어. 결승점이 눈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런 생각하면서 달리고 있었단다. 나에게 감격스러웠던 건 연습 때도 그렇게 느리게 뛰어본 적 없었던 10km 를 완주했기 때문도 아니었고, 처음으로 누군가와 동반해서 완주했기 때문도 아닌, 출발선에 서서 불쑥 들이밀었던 두가지 약속을 결국 네가 지켰기 때문이었지.

첫째, 아무리 힘들어도 뛰는 도중에 걷지 않기.
둘째, 나에게 널 두고 먼저 가라고 말하지 않기.

막상 출발선에 섰을 때는 네가 이 두가지가 어떤 의미인 건지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너무 쉽게 대답하는 것 같았어. 나를 먼저 보내므로써 부담을 덜 수 있는 기회도, 그렇다고 편해지고 싶은 유혹 조차도 너에게 허용하지 않겠다는 이 두가지 약속에 대한 무게는 그렇게 가볍게 시작됐지만, 힘겹게 뛰고 있는 널 보는 것만큼 점점 더 무거워지더니 골인 지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는 나에게 정말 커다란 기쁨을 안겨줬단다.

이제 또다시 너와의 달리기를 준비하면서 나는 새로운 고민에 빠지게 됐단다. 이번엔 너에게 약속 같은 걸 해달라고 하지 않을 꺼야. 그리고 그때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너와 다시 시작하는 마라톤에 또 한 번 의미를 갖어보려고 해. 그게 뭔지 지금부터 말해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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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0/09/08 22:49

나에게는 이질적인 여자들에게 호감을 느꼈던 경험들이 있다.

잠깐이라도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욕을 참 잘해서 관심을 갖었던 사람과,

놀라울 정도로 어눌한 말투가 좋았던 사람도 있었고,

시간 날 때마다 나이트에 놀러다니는 성질이어서 도무지 함께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던 탕녀도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을 뿐 다들 매력적인 여자들이었다.


이제 경험보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고, 그래서 나와 비슷한 사람이 좋아졌다.

그런데 어느새 그런 내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에게 참 이질적인 남자가 되어있었다.

그로인해 알게 됐다, 내가 그 여자들에게 갖었던 느낌은 호기심이었다는 걸.

그들에게 내가 상처를 남기진 않았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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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0/09/08 13:54
아버지의 세번째 차는 소나타II 였다. 앞서 타셨던 포니II와 스텔라는 중고로 사셨으니 새차를 사신 건 이게 처음이셨다. 네번째 차를 사실 때 2년이나 고민하시던 걸 생각하면 94년에 소나타II를 새차로 구입하실 땐 아마 훨씬 더 그러셨을 꺼다. 아버지께선 내가 운전면허를 딴 2005년까지 그 차를 11년을 타시고서 나에게 물려주셨고, 그렇게 아버지의 첫 새차는 나의 첫 차가 됐다. 그 차에는 세월만큼보다도 더 아버지가 많이 묻어있었다.

중고자동차 매매 광고를 보면 값 좀 나가는 물건들에 붙은 뻔한 호객용 거짓말들이 있는데, 그것들중 하나는 이런 거다. "대학교수님께서 출퇴근 때만 이용하셨던 차로 상태는 신차급입니다." 대학 교수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차를 깨끗하게 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아버지 때문에 약간 수긍이 가는 부분이 없잖아 있다. 내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차는 오래 됐음에도 정말로 출퇴근 하실 때만 탔셨기 때문에 1년에 고작 1만km 꼴로만 운행됐다. 게다가 워낙 천천히 운전하셨는지라 차 상태는 무척 좋았다. 그러나 물려받은 직후부터 서툰 운전실력과 급한 성격 때문에 차는 급속도로 망가지기 시작했다. 내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건 자동차였지 운전 성향은 아니었나보다. 그동안 억눌릴 수밖에 없었던 이 차의 질주본능을 깨워주곤 했었으니까.

이 차는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94년 한밤중에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를 처음 태웠다. 속내를 잘 드러내시지 않는 아버지시기에 그때는 몰랐는데, 당신의 첫 새차를 몰고 아들을 태우러 학교 앞으로 오시는 길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지셨을 걸 이젠 알겠다. 아마도 소나타II 이후로 내가 산 내 차로 처음 부모님을 모셨을 때의 폼나는 느낌과 비슷했을 꺼다. 그리고 그이후로 아버지께서 재직하셨던 대학에 입학하고 또 졸업하기까지 소나타II는 부자간에 드물었던 둘만의 공간이 되어줬다. 늘상 학교 일로 바쁘셨던 아버지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많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때는 내가 아버지보다 더 늦게 집에 들어오곤 했기 때문에 자율학습 후 귀가길에 태워주시곤 했어도 기억날만한 대화 한 조각이 드물 정도였다. 그렇기때문에 대학에 들어가서부터 아버지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서 등하교하는 일이 서먹했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난 그걸 꽤 즐겼고 아버지도 그러셨던 눈치셨다. 아마도 당신께서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던 이유였던 것 같다. 결국에 그 등하교 길은 내가 당신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줬고, 이 차는 그 시간의 공간적 배경이 되어줬던 거다. 다시 말하지만 이 차에는 세월보다 더 깊은 흔적이 묻어있다.

명절 때 아버지와 단둘이서 당신의 고향에 성묘차 오가던 길도 빼놓을 수 없는 흔적들 중 하나다. 나를 조수석에 태우시고서 십수년을 운전하셨던 그길에서 나는 대체로 잠들어있었는데, 아버지께선 여관비를 달라는 똑같은 농담을 꾸준히 반복하셨다. 언젠가 내가 운전을 시작하면 당신과 나의 좌석이 바뀌게 될꺼란 걸 예상했었지만, 막상 면허를 딴 후에도 아버지께선 나에게 운전석을 쉽게 내주시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명절 연휴에 당신의 고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아버지께서 내게 운전을 맡기셨다. 그리고 조수석에 옮겨 앉으신 아버지의 침묵이 길어졌을 때 문득 알게 됐다. 아버진 어느새 잠들어계셨다. 조수석에서 단골로 잠들곤했던 나와 내가 운전할 때 내 옆에서 잠드신 아버지의 교차된 모습은, 아직 운전면허가 없었을 때 막연했던 '언젠가는 내가 모시고 다니게 될 꺼다' 라는 예상에는 들어있지 않았던 느낌이었다. 언제나 운전석에만 앉아계셨던 당신께서 차 안에서 잠드신 모습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피곤하셨을 꺼다. 깨셨을 때 여관비 내시라고 말씀드리면 웃으실런지 속으로 생각했었다. 차마 말하진 못했다.

부모님과 떨어져 서울에 머물게 된지 10년이 넘었다. 교통 체증과 주차비 부담으로 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막상 면허를 따고 아버지로부터 차를 물려받은 후에도 운전을 자주 하는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쉬울 때 유용한 도구가 되준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마트에 다녀올 때 생수를 두어개씩 사들고서 손에 비닐 배긴 자국을 남겨야 했는데, 운전을 하게 된 후부터는 두 달 먹을 생수를 한 꺼번에 나를 수 있게 됐다. 직장생활에 이력이 붙으면서 점점 돈보다 시간이 비싸지게 됐고, 그 때도 이 차는 대중교통에 시간을 맞출 필요 없이 내 시간을 좀 더 편리하게 계획할 수 있게 도와줬다. 이 차를 타고 몇 번 놀러다닌 기억들도 있고, 한 번은 사고를 내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나의 소나타II는 급속히 노쇠했는데, 결국 그 차를 5년 타고서 나는 다른 차를 장만하게 됐다. 아버지께서 그러셨듯 나의 두번째 차도 중고 자동차지만 93년식 소나타II에 비하면 낯선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자동차다. 일단 차 열쇠부터 희한하게 생겼고, 사이드 브레이크도 자동이고, 시트에서 바람도 나온다. 그런데 소나타II와 두 세대쯤은 차이가 날 것 같은 차를 장만하고도 소나타II를 한참동안 처분하지 못했다. 그 이유들 중에는 앞에 적은 기억들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오늘 나의 그리고 아버지의 소나타II를 폐차했다. 폐차장에 차를 넘겨주기 전에 실내와 트렁크의 짐들을 비웠는데, 그중엔 아버지께서 넣어두셨던 물건들을 나역시도 치우지 않았던 것들이 꽤 많았다. 어딘지도 알 수 없고 기간도 한참 지난 세차권이나, 도로가 다 바뀌어서 쓸 수 없게 됐을 지도책 따위들은 어차피 버릴 것들이니 차와 함께 보내려했지만 결국 전부 다 꺼내 담게 됐다. 그렇게 물건들을 모두 비웠는데도 차 키를 넘겨주긴 쉽지 않았다. 텅빈 실내를 바라보니 아직 뭔가 가득히 들어 차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물건처럼 꺼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차는 떠나보냈고, 이렇게 그 흔적들을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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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0/07/07 07:57
사직공원 옆 어느 골목에 서있었다.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내 주변에서 우왕좌왕 고개 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보니 이름 모를 잠자리를 쫓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계절에 왠 잠자린가 싶지만 잠자리는 맞다, 이름은 몰라도.) 그것들이 나랑 더 가까워졌을 때 헛발질로 둘을 갈라놨다. 눈앞에서 벌어질 끔직한 광경을 보고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도 잠자리로써는 내게 박씨를 물어다 주거나 종을 머리로 들이받을만한 일이다. 잠자리에게 각골할 뼈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풀을 묶어 은혜를 갚는다고 이야기할머니들이 그러셨다. 혹 나 없어진 틈을 타 이름 모를 것들의 추격전이 마무리 됐다면 전혀 기대할 일도 못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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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0/07/01 01:12
하하는 국궁을(전통 활쏘기) 배우는 베트남 여자아이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국궁교실 명부를 보면 원래 이름은 '레 프엉 하' 인데 제가 그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사람들이 이미 '하하'라고 부르고 있더군요. 그래서 왜 '하하' 라고 불리는지는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국궁장에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국궁을 수련하고 즐기는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호기심에 체험하러 오는 관광객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가 있죠. 그런데 그들을 대하는 저는 여느 사람들과 다를 게 없이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배푸는 배려나 친절을 경계합니다. 거기엔 가식과 모순이 서려있기 때문이죠.

원래 우리는 이방인에 대해 그리 호의적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어르신들이 말씀하시기로 옛날엔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며, 시골인심 좋다고 말로만 전해지는 지방에선 실제 그런지 모르지만 서울은 아닙니다. 사람들끼리 서로 눈도 잘 마주치지 않고,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웃음보다는 찡그림으로 외면하곤 하는 사람들이 서양 외국인들에게는 무척 친절한 편입니다. 그 사람들에게서 마치 가면을 쓴 듯한 미소를 볼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해외에 여행나가서 외국인 입장이 되어 경험했던 친절을 가식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해외 여행지에서 항상 친절만을 경험했던 것도 아닙니다. 아마 관광버스 속이나 여행자 그룹 안에 갇힌 채 정해진 경로를 따라 타인과 섞임 없이 여행한 사람들은 경험해보지 못했을 멸시, 모욕, 차별 같은 것도 제 여행 속엔 분명 있었죠. 그래서 보고 싶은 것만 볼 게 아니라 그 이면까지도 좀 더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겁니다. 한단계 더 나가서 우리가 배푸는 친절은 기실 특정 부류에 한정적이고, 그외 자격미달의(?) 외국인들에게는 멸시나 차별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어떤 유대감도 없는 타인일 뿐인 외국인들에게 친한척 행동하는 걸 경계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모순됨 때문이기도 합니다.

국궁장에서는 모두가 하하에게 친절합니다. 그녀는 대학생이고, 우리말도 꽤 잘 하고, 물가가 비싼 서울에서 유학하는 걸 보면 형편 좋은 집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고 짐작이 됩니다. 물론 사람들이 그런 걸 계산하고서 행동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베트남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보면 그녀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제가 조심스러워집니다. 이건 미안함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녀와 이야길 하다보면 우리가 평소 베트남 사람들에 대해 보고 듣고 말하던 것들을, 그녀 앞에서는 평소와 다르게 이야기하거나 아얘 이야기할 수 없음을 자각하게 되니까요. 하하도 그걸 모를 것 같지 않습니다.  하하는 농촌에 시집온 베트남 여자들을 진료하는 자원봉사자들의 통역을 하고 있다 하니 아마 저보다 훨씬 더 한국에서의 베트남 사람들의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겠죠.

하하 송별회에서


지난 토요일 하하를 국궁장에 만났습니다. 지금쯤 그녀의 고향인 하노이에 돌아가있을테니, 그날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활 시위를 당기는 날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활을 당기는 느낌은 어땠을까요. 제 옆에서 활을 당기고 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보다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그녀도 저도 활에 화살을 메겨서 과녁을 향해 쏠 실력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세와 힘을 기르는 수련을 하고 있고, 순서대로 벽을 보고 선 채 빈 활을 반복해서 당기는 게 전부입니다. 저는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 사대에 서서 과녁에 화살을 날리게 될 겁니다. 그러나 그녀에겐 벽거울에 비친 자신의 활개편 모습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던 지난 토요일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실은 그날 그녀가 쓴 20파운드짜리 활로는 140미터 과녁까지 화살이 날아가지도 않습니다. 그게 허무한 일이 되지 않는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요. 우리말보다 영어를 더 잘하고 싶어하는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짧은 시간에 우리말을 꽤 능숙하게 말하고 읽는 그녀의 "한국 수련"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녀가 우리보다 더 우리를 진지하게 배우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외국인에게 무턱대고 배푸는 친절보다도 더 향기로운 뭔가를 느끼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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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0/06/08 01:14
지금까지 30년 넘게 살았는데, 그 중 제 힘으로 산 건 10년 정도밖에 안되고, 그전엔 부모님 덕을 보며 자랐습니다.

부모님을 벗어난 10년동안 꾸준히 앞으로 남은 생을 잘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할 때가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겁나고 두려울 때가 왕왕 있습니다.


그리고 배우자를 맞이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여자들은 함께 하면 행복해질 사람을, 좀 더 솔직히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를 행복하게 해줄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들은  많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 그들에게 비루한 현실을 멀게 느끼게 해주는 조건들일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혼자 버텨내기 어려운 삶에, 함께 불행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입니다.


저는 속도와 소유를 행복으로 향한 길로 착각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약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가 찾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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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0/04/25 17:40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졌다."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이 있다. 나는 그 소설의 내용보다 더 저 문장을 좋아한다. 실제로 10km 쯤 긴 터널을 빠져나온 순간에 눈 앞에 펼쳐졌다는 설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두운 밤이었기에 환하게 빛났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상상하는 일은 질리지 않는 흥분을 가져다 준다.

밤이어서 유독 더 빛나보이는 것이 한가지 더 있는데, 이효석작가님은 그걸 메밀꽃이라 했지만 내게는 목련꽃이 그렇다. 고등학교 자율학습을 마치고 자정 무렵에 학교를 나서면 조명도 없이 깜깜한 학교의 텅빈 운동장에 유독 방글방글 빛나는 꽃이 있었는데 바로 목련이었다. 봄에 짧게 피어서 길게 만나보기 어려운 목련 꽃. 나를 마중나오셨던 어머니께 하루는 당신의 웃는 얼굴이 목련꽃을 닮았노라고 말씀드렸던 것에 당신은 오래오래 기뻐하시기도 했었다.

요즘 늦은 밤에 퇴근하면서 회사 건물을 나설 때마다 보게 되는 것이 벚꽃나무들이다. 매일 밤마다 지친 마음의 밑바닥까지 하얘지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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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0/03/30 20:11
수년 전에 교통사고 때문에 병원에 실려와 수술대 위에 누웠다.

정신이 혼미했을 때라 자세한 기억이 아닌 이미지로만 남아있는데,

그래서 아마 사실과는 다를 꺼다.


그 수술대는 스테인레스 같았는데 중학교 해부시간에 물고기를 올려놓던 쟁반처럼 차가웠다.

난 그 위에 축 늘어져서는 벌어진 나를 꾀매줄 누군가를 기다리며 뻐끔거렸다.

내 머리 위로 지나가는 하얀 조명에 가려 알아볼 수 없는 도구들은 내 살에 닿아야 무엇인지 짐작이 됐다.


수술대 위에서 엄청 오랜 시간이 흘렀을 것 같지만, 실제론 그리 길지 않았을 꺼다, 역시 아마도.

그렇게 길다고 느껴진 시간 동안에 나는 지금보다 더 고통스럽고 무서웠던 때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이빨에 묶은 실을 예고없이 잡아당길 엄마에 대한 의심과 경계를 늦추지 못하면서도 엄마에게 안기고 싶었을 때.

아이들과 씨름하다가 탈골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팔을 X-ray검사 때문에 억지로 이리 펴고 저리 벌리고 해야 했을 때.

그런 것들을 아무리 떠올려도 지금 이순간을 달래줄만큼 아프고 겁나는 경험이 내게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 스테인레스 수술대 위에 누웠던 순간을 떠올리고 있다.

그 후로 지금보다도 더 괴로웠던 때는 있었다.

그래서 고통은 참을 수 있다.

그런데 좋은 결과를 포기하더라도 이 고통을 짧게 끝내고 싶어지는 마음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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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0/03/09 10:52
사실은 계절이 아니라, 사람들이 계절을 지나치며 바삐가고 있습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봄을 향해 등돌린 사람들에게 겨울이 눈을 흩날려 배웅하고 있네요.

쌓이지도 않을 만큼은, 지저분한 안녕이 되지 않을 만큼.

눈은 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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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0/02/16 16:25
집에 손님이 오면 어두운 다락에 갇혀 지내야 했던 그 심정을 난 이해한다. 이상의 "날개"를 처음 읽었을 때 나와 같았던 사람이 또 있음에 그가 반가웠었다.

어렸을 때부터 명절에 손님이 찾아오면 나는 방에 갇혀서 나갈 수가 없게 된다. 이런 내가 딱해보이셨는지 어머니께서 여물 주듯 인삼물 같은 걸 방에 날라다 주시지만, 저걸 마시면 밖에 더 나가고 싶어지게 된다. 

"날개" 속 나의 탈출 욕망은 오줌이 마려운 데 참아야 하는 것과 같다는 걸 난 안다. 이렇게 서른이 넘어서도 방에 갇혀있는 이 어른 아이의 날개는 바로 아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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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0/02/10 13:44
저는 지금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와있습니다. "보광 휘닉스파크"라고 부르면 사람들이 더 잘 알아듣는 곳이기도 하죠. 하지만 마음이 그렇게 부르길 싫어하네요.

저는 스키를 탈 줄 모릅니다. 여기도 사실 학회 때문에 왔고요. 아침해가 뜨기 전에 출발했는데 서울에서부터 줄곳 주룩주룩 내리던 비가 평창엘 들어서자마자 함박눈으로 바뀌더군요. 이제 일을 마치고 돌아가야 하는데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세수도 할 수 있는 곳에서 물만 먹고 가기 때문인 것 같진 않고요.

차에 기름이 떨어져서 가길에 정차해두고 주변에 주유소를 검색하려고 해요. 주유소까지 갈 연료를 아끼려고 시동을 꺼놓고 있었더니 금새 차 위에 눈이 쌓이네요. 아마 지금 올해의 마지막 눈을 맞고 있는 거겠지요. 이렇게 조금 더 있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주변 주유소를 검색하듯 저는 서울 날씨도 알아낼 수 있지만, 검색과 어울리지 않는 궁금함도 있습니다. 서울에도 눈이 내리고 있나요?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점심식사를 하러 가더군요. 그중에 봉평 메밀국수를 먹으러 간다는 사람들은 어저께 송어회를 먹었답니다. 이곳의 송어회는 제게 추억의 음식이기도 하죠. 하지만 눈이 많이 와서 돌아갈 길이 막막하면서도 느껴지는 이 아쉬움은, 제가 그들 사이에 낄 수 없는 서먹함 때문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유 없이 그냥 조금만 더 이렇게 있어보려고요. 이제 차 유리창이 눈에 가려서 밖이 보이지도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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