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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mp3 는 그런 게 없습니다. 검색으로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정보지만 mp3 위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 중 album credit 을 일부러 찾아보는 사람이 있기는 있을까요? 앨범의 주인공만 관심있을 뿐 누가 작곡한 건지, 누가 연주를 했는지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아지는 게 mp3 로 즐기는 편리한(?) 음악일 겁니다. 휴대하기 편한만큼 버려지거나 생략된 것들도 있는 거죠. 그럼에도 음악만 들었으면 됐지 그딴 정보는 필요 없다고 할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음악 듣는 즐거움 하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The Lounge Lizard - No pain no cakes | Dave Douglas - Freak in | Medeski Martin and Wood - End of the world party |
그의 이름이 credit 에 있기 때문에 산 음반들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09년 그래미를 수상한 Robert Plant 와 Alison Krauss 의 "Raising Sand" 가 있죠. 컨트리 스타일까지 커버할 수 있는 Marc Ribot 의 연주는 Alison Krauss 의 이후 작품들에서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또 한참동안 제 휴대전화 착신음을 장식했던 Lucien Dubius Trio 의 "Ultime Cosmos" 음반의 경우 Marc Ribot 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음반은 발매되자마자 국내 재즈팬들 사이에도 큰 호평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이 앨범에는 DVD가 포함되어있어 Marc Ribot 이 음반을 녹음하는 장면을 직접 볼 수도 있었죠. 마지막으로 얼마전에 산 Rebekka Bakken 의 "Morning Hours" 음반도 Marc Ribot 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사지 않았을 겁니다. 노르웨이 포크송 스타일이 짙은 Rebekka Bakken 의 초기작에는 기타리스트 Wolfgang Muthspiel 이 있어서 좋아하게 됐었는데, Wolfgang Muthspiel 이 작업에서 빠지고부터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죠. 그래서 새 음반이 나와도 관심갖질 않은지 몇 년 됐는데, '09년에 발표한 이 음반의 credit 에 Marc Ribot 이 올라와있는 걸 보고 망설임 없이 샀습니다.
Robert Plant & Alison Krauss - Raising Sand | Lucien Bubuis Trio & Marc Ribot - Ultime Cosmos | Rebekka Bakken - Morning Hours |
이렇게 좋아하는 뮤지션의 다양한 모습을 여러 다른 뮤지션들의 음반에서 경험할 수 있는 건 음반으로 음악을 듣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일부러 찾아들어야 하는데 mp3 로 듣는 음악이 그런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나요? 또 그렇게 깊은 취미를 위해 찾아듣는 일 자체가 mp3 라는 매체의 틀에서 가능하기는 할까요?
그저 유행에 따라 듣는 음악에서는 음악 듣는 이런 즐거움을 찾을 일이 거의 없겠지만 연주음악, 특히 재즈에서는 음반을 통한 음악감상이 필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만큼 여러 뮤지션들이 서로의 다양한 음반에서 연주를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재즈에서 한정해서 따질 일도 아닌 것이, Michael Brecker 나 Pat Metheny 가 팝 음반에서 연주하는 걸 들을 수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음반 재킷이 없다면 아주 민감한 귀가 아니고서야 듣고도 모르고 지날 일이죠.
Sony 의 혁신적인 휴대용 CDP D-777 모델입니다. 샵을 지나가다 무심코 보고 사버렸었죠. CDP 가 이렇게 작을 수 있을까 하는 단순한 이유가 작용했을 뿐이었는데 이후로 한참동안 어딜 가든 항상 함께 다니게 됐습니다. 약간 특이하게 생긴 상자 모양의 가방을 사서 십여장의 CD 들과 함께 넣어서 다녔고 그덕에 "전자인간" 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었죠. 지금으로써는 이해가 안 가겠지만 mp3 가 나오기도 전이었던 때니까요. 그러다가 픽업 수명이 다해서 더이상 쓸 수가 없게 되었고, 그 후로 휴대용 기기로 음악 듣는 일이 드물게 되었습니다.
한참 지나서 갖게 된 iPod 은 갈아 끼울 CD 들을 들고다닐 필요 없이 충분히 많은 음악들을 휴대할 수 있게 해줬죠. 하지만 이미 이어폰은 부자연스러운 게 되어버려서 아이팟은 거치형 스피커에 꽂아서 사용하게 되더군요. 이어폰이나 헤드폰, 그리고 휴대용 음악기기들이 아니라 저는 mp3 같은 매체도 듣기 불편합니다. 아마도 CDP 의 고장과 mp3 시대의 도래라는 것이 맞물려서 제게 음악을 이어폰으로 듣는 일 자체를 그만두게 하다시피 했던 게 아닐까 싶네요. 음악은 음반을 스피커로 들어야 제맛이죠.
그러다가 제게 새로운 휴대용 CDP 가 생겨났습니다. 맥시코와 쿠바 여행을 앞두고 항공경유지인 일본의 오사카 전자상가에 들러Sony D-NE20 을 샀고, 상자 따위들을 다 버리고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랬던 이유는 여행중에 만나게 될 CD 들을 mp3 로 아이팟에 넣고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실제로는 쿠바와 맥시코에서 CD 를 구해듣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행중에 만난 음악이라고 해서 아무거나 다 환상적인 음악이라고 우긴다면야 길거리 시장에서 넘쳐나는 불법 CD 들을 가지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쿠바나 맥시코가 그리 문화예술적으로 발전해 있는 곳은 아닙니다. 되려 그 반대죠. 그러니 양질의 음악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우리나라보다 더 불법 복제 CD 가 보편화되어있는 환경에서 그 음악을 양질의 CD 로 구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짐만 되다시피 했던 CDP 는 여행중에 이미 고장이 나버렸습니다. 충전이 되질 않는 고장이 생겨서 여행중에도 건전지를 끼워 사용했었는데, 그역시 건전지 사용량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문제로 여의치 못했죠. 결국 그상태로 수년을 묵혀두다가 최근에 서비스 센터에 맡겼는데, 허탈하게도 CDP 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소위 껌전지라고 부르는 충전지에 문제가 있다는군요. 지금은 Sony 가 CDP 를 더이상 만들지 않기 때문에 껌전지를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 간단한 문제었다면 벌써부터 껌전지를 교체했으면 됐을 일이었던 건데 말입니다. 아마 고장이라고 판단했던 때부터 휴대용 음악기기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고쳐서 쓸 의지가 없었던 걸 겁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CDP 가 필요해졌습니다. 앉아서 스피커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없어졌고 앞으로 더할 거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포장조차 뜯지 않은 많은 CD 들을 한번씩은 들어줘야 겠는데, 그러니 이동중에라도 들어야겠더군요. 그래서 결국 여분의 껌전지도 구했고, 인터넷에서 배터리 에러를 고치는 방법을 찾아 직접 고쳤습니다. 그러고나니까 기분이 좋아졌네요.
2010년 8월 20일 EBS SPACE 공감
티어니 서튼 Tierney Sutton(보컬),
크리스천 제이콥 Christian Jacob(피아노),
케빈 액스트 Kevin Axt(베이스),
레이 브린커 Ray Brinker(드럼)
“재즈는 자유로운 음악이고, 즉흥연주를 통해 이를 만끽하는 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동의할 만한 것이, 스탠더드 곡들의 전통적인 명연들처럼 아직도 주제 뒤에 즉흥연주가 따르는 형식의 연주를 우리는 흔히 보고 듣기 때문이다. 그 경우 연주력과 곡 진행의 구성적 매력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재해석의 전부라 할 수는 없다. 티어니 서튼 밴드의 공연은 전통적인 연주뿐 아니라 바로 재해석이라는 면에서 차별성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현시대의 재즈만을 놓고 보았을 때, 재즈가 자유로운 음악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치밀하게 짜인 복잡한 구성물로서, 처음 들을 때는 단순하게 다가왔다가도 곱씹어 들었을 때 정체를 드러낼 때가 많다. 현대 재즈를 감상 음악으로 두드러지게 만드는 요소들은 지나가면 없어지고 말 즉흥성이란 말로 얼버무려지지 않을 뿐더러, 단순히 자유가 느껴진다고 말하기엔 그 치열함에 비해 성의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재즈가 변화하고 있는 순간 속에서 함께 살며 느끼기로, 현대 재즈는 작곡과 구성 그리고 해석이란 요소에 비중을 두고 들었을 때 더 큰 감동을 준다. 즉흥연주 또한 이런 요소들과 어우러져 연주됐을 때 효과가 크다.
티어니 서튼 밴드의 공연은 현대 재즈의 주된 감상요소 중 ‘재해석에 의한 독창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음반에서 듣던 것에 현장감을 더한 채 모든 곡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짜여있었고, 밴드는 자신들의 독창적인 재해석을 표현하는 데 열중하며 보란 듯이 무대 위에 서있었다. 스탠더드에 대한 이들의 재해석이 뛰어나다 할 수 있는 데에는 여러 부연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밴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장 17년을 함께 해온 밴드에 의한 편곡은 프로젝트 리더의 주도에 의한 해석보다 훨씬 아기자기한 결과를 나았고, 개개인의 연주력에 의존하지 않은 채 다른 밴드의 음악과 차별화시키고 있었다.
현대 재즈의 음악적 지향과 가치를 대중성에 놓고 보면 치밀함이나 독창성 같은 감상 요소들에 대한 언급이 쉽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티어니 서튼이 세 차례나 그래미 후보로 올랐을 뿐 막상 수상하지는 못한 까닭이 거기에 있잖을까?
동물원에 가면 뭔가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그래서 가보고 싶게 만드는 노래. 동물원에서 어떤 일이든 벌어진다고 했다는 가사 속의 누군가(someone),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순진하게 믿었던 걸 수줍어하면서도 노래로 만들어 들려주고 있는 사이먼. 거기 동물원에 가면 평소엔 없었던 이야기들,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있다고 한다.
+
틀에 박힌 이야기들과 똑같은 반응들이 순서만 달리 배치되는 걸 매일매일 격고 있다. 그리고 그런 것에 무덤덤해지기엔 너무 예민하고, 지겹다고 느끼고 있는 걸 감추기엔 너무 솔직하고, 그냥 거기에 동화되기엔 내가 너무 강한 나는,
대화가 절실히 필요한데 이야기에 쓰이는 소재들과 어휘들을 잊어가고 있다.
대화가 절실히 필요한데 이야기가 재미있는 상대방이 절실하다.
2010년 4월 8일 EBS SPACE 공감
송영주,배장은(피아노), 써니킴(노래), 김인영(베이스), 숀 피클러(드럼)
올해 4월로 EBS 스페이스 공감이 개관 6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면서 한국 재즈를 대표하는 세 여성 뮤지션들이 한자리에 어우러지는 기회가 마련됐다. 피아니스트 송영주, 배장은과 보컬리스트 써니 킴이 그 주인공들인데, 여기에 베이시스트 김인영과 숀 피클러(Shawn Pickler)의 드럼이 더해져 듀오에서부터 두 대의 피아노가 주도하는 퀸텟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편성을 들려줬다. 드러머를 제외하고는 그간 EBS 스페이스 공감을 포함해 여러 무대에서 접해왔던 뮤지션들이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미사리 카페에서 만나게 될 것 같은 음악인들을 대하는 상투적인 느낌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이건 공연 전에 머리로 생각할 때의 이야기다. 막상 공연에서는 알면서도 속게 되는 마술 같은 홀림을 경험하게 됐으니 말이다.
이번 공연이 마술 같았다는 비유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른 얘기지만, 마술쇼는 얼마나 뻔한 내용을 담고 있던가. 커다란 상자에 들어간 미녀의 허리가 곧 잘릴 거란 건 누구나 알고 있다. 허리가 잘린 미녀는 말도 하고 심지어 잘려진 몸이 따로따로 움직일 거란 것도 안다. 그게 다 거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커다란 칼이 상자를 두 동강 내는 순간 더 실감나게 비명을 지르는 건 관객들이다. 재즈 공연도 쇼 비지니스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어느 공연이나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기획과 연출의 중요성을 빗대어 생각해볼 수는 있다. 수많은 뮤지션들과 함께 양질의 공연과 방송을 제악해온 EBS 스페이스공감이 지난 6년 동안 올곧게 걸어온 것처럼 말이다.
그중 특별한 기획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재즈, 클래식을 품다'에서 인상 깊었던 '나비부인'을 이날 송영주와 배장은의 듀엣으로 다시 듣게 된 건 반가운 일이었다. 이어진 'Monk Medley' 에서 두 사람은 델로니어스 몽크를 모창하는 듯한 연주로 이 거장에 대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영화 <Out Of Africa>를 통해 잘 알려진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그 익숙함 때문에 진행될 멜로디가 미리 떠오르는 곡이기도 하지만, 재즈 연주 속에서 이어질 멜로디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전달됐다. 이날따라 써니 킴은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을 떠올리게 하는 풍부한 발성을 들려줬다.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작년에 가진 단독 공연 때도 연주됐던 'Everywhere' 의 경우 그런 발성이 보컬 이펙터와 시너지를 이뤄 또 다른 느낌으로 연출됐다. 전반적으로 곡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연주를 펼쳤고, 특히 송영주의 'Yellow Brick Road' 에서 인상적인 드러밍을 들려준 숀 피클러에게는 환영인사를 전하고 싶다. 국적을 떠나 한국에서 활동하는 좋은 연주자들이 많아지는 건 당장의 반가움 이상으로 좋은 일이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의식적으로 공연에 너무 빠져들지 않으면서 어떤 특징적인 소재들을 찾아내고 연주 내내 그것과 연관지어 생각을 이어가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어느새 음악에 정신을 놓게 되는, 머리로는 어떻게 안되는 곤란한(?) 공연이었다. 이는 공연에 홀려버렸다는 앞서의 말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시절, 아껴 모든 용돈으로 음반 한장을 후회 없이 사기 위한 아슬아슬한 고민들을 동반하며 음악에 빠져들던 필자에게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줬던 매체는 바로 라디오였다. 이제 라디오에서 그런 음악방송이 사라지다시피하고 있다는 건 참 씁쓸한 일이다. 그런데 EBS 스페이스 공감의 방송이 호기심어린 세미마니아들에게 대안으로서의 의미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미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들이 점차 자신의 취향에 깊이를 더해 마니아가 되었을 때 결국 무대까지 찾게 되지 않을까. EBS 스페이스 공감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취향을 확실히 아는 이들이 찾는 '무대'가 있는 한편, 음악에 진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들에게 깊이 있는 음악을 소개해주는 '방송' 또한 동시에 만들어진다. EBS 스페이스 공감은 그들과 함께 하는 공연이면서, 또 앞을 향한 씨앗이 되기도 할 거다.
그런데 공연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무용수 금빛나의 '오디시'는 인도 전통의 것을 흉내내는 수준의 설익거나 어설픈 것은 아니더군요. 저는 사실 '오디시' 무용을 처음 봤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금빛나의 무용이 어설픈 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그것을 처음봤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군요. 말하자면 무용 그 자체가 즐길 수 있을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주었을 때, 그것이 '오디시' 라는 이름을 하고 있건 다른 종류건 상관 없이 훌륭한 것이고, 그런 훌륭한 몸짓이라면 이미 뭔가를 흉내내는 수준의 예술인에게서 나오는 훌륭함일 수가 없죠. 제가 만약 '오디시'에 대해 일각연이 있거나 혹은 오늘 본 것과 비교해볼 수 있는 경험이 있었더라면 오리지널인지 아닌지, 또는 전에 본 것과 어떻게 다른지에 더 얽매여서 보게 됐을 수 있기 때문에 되려 무지 상태에서 본 것이 판단하는 데 더 좋았다라는 거죠.
사실 무용이란 분야 자체가 낯설기도 한데, 이번 공연을 보면서 춤과 무용이란 게 어떻게 다를까 생각했습니다. '오디시'는 무용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 거죠. 사전을 찾아봐도 제 생각을 뒷받침 해주고 있는데, '오디시'는 흥에 겨워서 추는 춤은 아닙니다. 의도와 감정을 음악에 맞춰 드러내는 '오디시'는 바로 무용인 거죠. 오늘 제가 본 '오디시'는 이야기이면서 연주기도 했습니다. 마치 입으로 이야기를 말해주기라도 할 듯한 몸동작들의 연속이었고 음악과 함께 움직임과 동시에 그것에 섞여 연주하기도 하더군요. (발목에 작은 종 꾸러미를 차고 있어서 마치 탭댄스 처럼 발 장단에 따라 소리가 납니다.) 얼굴 표정은 물론 눈동자의 방향까지도 연기하는 섬세한 예술이었습니다.
음악은 녹음된 걸 틀었기 때문에, 라이브 연주가 아니어서 아쉬웠습니다. 시타르 연주자를 붙잡고 악기를 배울 방법을 물어볼 작정이었기 때문에 더 실망스러웠죠. 하지만 음악은 무척 좋더군요. 나중에 따로 연주된 음악이 뭐였는지 알아낼껍니다.
여담이지만, 금빛나의 '오디시' 공연은 지난 일요일 서울의 국립극장에서 한 번, 오늘 수요일 용인시여성회관에서 한 번, 이렇게 두 번 치러졌습니다. 굳이 평일이면서 더 멀기도 한 용인시를 찾아간 이유는, 요즘 그게 뭐던간에 문화행사라면 엄마들이 시끄러운 아이들을 몰고다니는 게 보기 싫어서였어요. 예상대로 용인시여성회관은 자리도 넉넉하고 한산하니 좋더군요. 이곳저곳 전시장들 따위에 아이들 데리고 다니는 엄마들은 문화행사 장소에 아이들을 풀어놓기만 한다고 교육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스스로 즐길줄 아는 취향을 갖춘 부모를 아이들이 보고 배운다는 걸 깨달았으면 합니다.
2010년 2월 5일 EBS SPACE 공감
송준서(피아노), 김인영(베이스), 정승우(드럼)
2008년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는 피아니스트들이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연주한 연간 기획 시리즈 "재즈, 클래식을 품다"가 펼쳐졌다. 그 마지막 무대였던 "근현대 음악"의 피아니스트 송준서는 다른 연주자들과 어딘가 달랐다. 네 명의 여성 피아니스트들 속에서 남자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나, 그가 다뤘던 현대음악의 상대적 낯설음도 분명 작용했을 거다. 잠시 생각해보면 '자화상'이란 다분히 회화적인 소재다. 그림이 종교나 왕권을 표현하던 수단이었을 때도, 자기 자신에 대한 표현이 금기시됐거나 억압됐을 때도 화가들은 자화상을 그렸다. 그만큼 "나를 어떻게 표현할까"에 대한 고민이 강하게 묻어난 것이 자화상이다. 송준서의 자화상 같았던 이 무대는 어렴풋했던 그의 색깔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스퍼트까지 숨차게 달리는 듯한 그의 연주는 예쁘기보단 힘 있고 굵직한 리듬과 멜로디가 묵직한 터치로 가득 채워졌다. 'Windows'나 'Spain'이 포함돼 있기도 했지만 칙 코리아나 곤잘로 루발카바 같은 부피감과 섬세함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원곡 스타일의 피아노 독주로 마무리해 대비 효과를 준 쇼팽의 'Preludes No.4 in E minor'에서 그런 특징이 두드러졌는데, 국내에서 보지 못했던 스타일을 만나게 된 반가운 느낌이었다. 그의 즉흥연주에선 귀에 익은 클래식 멜로디들이 들키지 않을 만큼 들리기도 했다. 송준서는 클래식뿐 아니라 다양한 음악을 소재로 자신의 색깔을 표현해내는 연주자다.
솜씨 좋은 사람이라도 음악을 글로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다시 오지 않는 순간에 대한 공연리뷰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특히 이 날처럼 인상 깊은 연주를 접했을 땐 한 장의 앨범을 건네주듯 그 느낌을 재현할 수 없음이 큰 아쉬움이다. 그런데 EBS 스페이스 공감의 공연에 대해서는 그게 가능하다. 녹화된 방송을 보는 방법도 있고 다시보기도 있기 때문이다. 송준서의 <Portrait> 앨범 레퍼토리로 연주된 공연이었지만 앨범과 또다른 맛이 있었다. 본방사수로 필자와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반면 알게 모르게 시장에 나오는 박스셋 또는 그에 준하는 세트 기획상품들도 있습니다. 이들 중 우리나라에 수입조차 되지 않은 것들도 적지않습니다. 예를 들면 작년에 40주년을 맞은 '69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다양한 패키지 구성의 박스셋이 출반됐죠. 이경우는 우리나라에도 감독판 DVD, 편집된 LP 또는 CD 세트 정도가 들어와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더 화려하고 다양한 구성으로 기획되어 발매되었죠. 또다른 예시로 Pixies 의 박스셋 Minotaur 와 Henry Cow 40주년 박스셋이 있는데, 이미 전작 컬렉션을 둔 상태임에도 개인적으로 무척 갖고 싶은 박스셋들이지만 둘 다 가격이 상당하기 때문에 엄두를 못내고 있죠. 이런 전작 컬렉션 박스셋까진 못되더라도 뮤지션을 대표하는 3 장의 음반을 묶은 트릴로지Trilogy 박스셋들도 있는데 그런 것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적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이랬던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세트 구성을 이루는 기획음반들이 최근에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경향을 알게 해줍니다.
박스셋 상품들 중 차라리 잘 알려지진 않았고 게다가 고가이기까지하지만 팬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경우는 다릅니다만, 유행 같은 저가형 박스셋 발매는 씁쓸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음반 시장이 끝물 장사를 떨이로 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이 매우 짙기 때문이죠. 그래서 마치 폐업 정리 세일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두 번 녹음했습니다. 그래서 말러 전집이 도이치 그라마폰에서 하나, 소니에서 하나 이렇게 두개 존재하죠. 이중 DG 녹음은 구스타프 말러 녹음들을 통털어서 가장 좋은 평을 듣는 음반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소니에서 나온 전집보다 대중들의 선호도가 높은 건 당연하고요.
그런데 DG 전집도 두가지 버젼이 있습니다. 16CD 가 박스로 된 게 있고 나중에 나온 건 사진에서처럼 6CD, 5CD, 5CD 로 세개의 박스로 나뉘어서 판매되며 가격도 더 싸졌습니다. 그래서 흔히들 버짓budget 전집이라고 라고 부르죠. 내용도 음원도 같고 박스 디자인만 다르며, 버짓 세트와 마찬가지로 세개의 박스로 구성된 걸 아웃케이스로 씌운 것이 오리지날 전집세트죠. 오리지널 전집에는 꽤 두꺼운 해설집 하나가 더 들어있는데, 버짓 전집에는 해설집이 각각의 박스에 따로따로 들어있는 것도 차이점입니다. 오리지널 전집은 번스타인과 말러가 마주하고 있는 흑백 인쇄가 꽤 멋있지만 가격 차이가 몇 만원 나기 때문에 이름 그대로 버짓 전집이 실리적인 선택이죠.
소니뮤직에서 나온 말러 전집은 작년 2009년에 리마스터링 되어 10만원도 안하는 가격에 12CD 로 재발매 되었습니다. 셋 다 구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저는 클래식을 매우 즐기는 건 아닙니다. 정경화에 대한 흥미는 있었지만 사고 싶은 음반들은 언제나 넘쳐나기 때문에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있었죠. 그런데 이번 전집 발매는 구매를 위한 우선순위를 앞으로 껑충 뛰어오르기에 충분했어요.
첫번째 이유는 피아니스스 백건우의 베토벤 소나타 전집 박스셋의 한정발매에 대한 전례입니다. 더이상 구할래야 구할 수도 없고 워낙 소강가치가 높다보니 중고시장에도 나오질 않습니다. 나오더라도 가격이 상당해서 왠만큼 바라지 않고서야 새 걸 살 때만큼의 구매력을 발휘하긴 어렵겠죠. 이번 정경화 전집도 5천개 한 정이기 때문에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야 했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가격입니다. 19장의 CD 와 1장의 DVD 로 구성된 전집의 정가가 163,700원 입니다. 물론 온라인 할인가에 각종 쿠폰 등을 더하면 13만원 정도에 살 수도 있죠. 그녀의 데타 레이블 전작 컬렉션을 하려면 그보다 두배 이상의 돈이 들 게 뻔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도 구매력을 자극하죠. 전집을 사지 않고서 맘에 드는 것만 샀을 때 7,8 장 정도만 골라도 전집의 가격이 돼버립니다. 물론 절판되어 개별적으로 구할 수 없는 음반도 있으니 그걸 세번째 이유로 삼아도 되겠죠.
다른 이유는 개봉을 하면 알게 됩니다.
구성은 두꺼운 화보집 하나와 세 개의 gate-folded 재킷으로 되어있고, 각각의 재킷에는 미디어 20장이 한가득 나뉘어 꽂혀있습니다. 화보집은 한글과 영어로 설명된 내용들과 다양한 사진들이 수록되어있고 꽤 잘 만들어져있습니다.
올해 5월 4일 예술의 전당에서 정경화 협연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습니다. 손가락 부상 이후 5년만의 무대 복귀라죠. 왠만한 표 값이 정경화 전집 하나보다 비쌉니다.
2010년 1월 5일 EBS SPACE 공감
김인영(베이스), 홍성윤(기타), 한웅원(드럼), 박진영(피아노), 강채리(피아노)
작년 재즈피플 12월호에 "재즈야, 우리 아이를 부탁해"라는 기획특집이 실렸다. 글을 쓴 재즈비평가 김현준은 자라섬국제재즈콩쿨의 결선 무대에서 만난 두 어린 피아니스트 박진영과 강채리를 조명하며 그들이 자라왔고 앞으로 자라날 우리 환경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들을 던졌다. 그리고 그가 기획의원으로 있는 EBS 스페이스 공감은 이 글의 제목을 반전시킨 "얘들아, 재즈를 부탁해 - 미래를 짊어진 한국의 재즈 악동들" 이란 타이틀의 공연으로 2010년 첫 무대를 꾸몄다. 지면을 통해 보여줄 수 없던 부분을 메워주려는 기획의도가 엿보였다. 한국 재즈에 대한, 그 미래를 책임질 연주자들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은 채 말이다.
박진영과 강채리 뿐 아니라 작년과 올해 재즈피플의 "라이징 스타"로 선정된 한웅원, 김인영, 홍성윤 등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한국 재즈의 미래를 짊어질 연주자들이 물론 이들 뿐은 아닐 것이다. 김인영, 홍성윤, 박진영, 강채리는 자라섬국제재즈콩쿨의 결선에 오른 연주자들이고, 한웅원은 작년 재즈피플이 선정한 라이징 스타 중 한 명이다. 공연은 의도한 듯 다양하게 계획된 편성을 통해 모두의 개성을 잘 보여주었고, 한국 재즈의 미래를 조망해보는 기분을 갖게 했다. 말하자면 신년 사주팔자랄까.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이날처럼 이렇게 다양한 앙상블을 다시 만나면서 흐뭇했던 점괘를 떠올리게 되길 바란다.
보틀렉 슬라이드 기타로 스타일리쉬하게 시작된 에스베욘 스벤숀의 'Tide of Trepidation'이 공연의 첫 순서였다. 개성 있는 편곡에 이어 기타리스트 홍성윤은 자작곡인 'Not Yet'을 들려주었는데, 15박자의 이 곡도 그랬지만 이후 다른 이들과의 연주에서도 독특하고 인상적인 박자감각을 선보였다. 그의 트리오 멤버인 정진욱과 김민찬의 연주도 단 두 곡으로 그치기엔 아쉬울 만큼 좋았다. 쿨한 소리를 많이 알고 있는 듯한 드러머 한웅원은 능청스럽고 장난기 어린 잔재미까지 더해줬고, 최근 들어 수차례 무대를 접하면서 드디어 보잉을 처음 들려준 베이시스트 김인영의 독주 'Bye Bye Blackbird' 또한 인상 깊었다.
피아노 솔로를 사이에 두고 연결된 접속곡 형태의 'King of Spade/Queen of Heart'에서 박진영은 후반으로 갈수록 곡의 구성 면에서 극적인 맛을 더해가는 작곡과 연주를 보여줬다. 뒤에서 독주로 연주된 강채리의 'Hand Stand'가 때 묻지 않은 소녀의 감성으로 완성됐다면 박진영의 감성은 상대적으로 음울하다. 왠지 그 모습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나이이기에 어색해 보이기도 했지만, 국내에선 이런 지향을 가진 연주자가 많지 않아 그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데 음악적인 강점이 될 수 있겠다. 한 대의 피아노로 박진영과 강채리가 함께한 즉흥연주는 연주 자체의 완성도보다 그들 각자의 개성을 대조해보는 기회가 됐다. 미려한 멜로디보단 무거운 감성과 곡의 구성적인 면에 강점을 드러내는 박진영이 피아노의 왼편에, 스윙 감각이 돋보이는 발랄한 강채리가 오른편에서 연주하여 이 두 피아니스트들의 서로 다른 개성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제 막 자아가 완성돼 가는 10대들이 과연 한국이란 나라에서 개성을 발산하는 게 가능한지 갸우뚱해지지만, 아이들에게 똑같은 억양의 웅변을 쏟아내도록 가르쳐놓고 그 안에서 옥석을 기대하던 게 이젠 옛날 일이구나 싶어 반가웠다.
필자는 작년 "퓨쳐스 앙상블 2009"의 공연 리뷰에서 어느새 정착된 한국의 재즈교육 환경과 거기에서 자라난 세대에 대해 설레는 기대감을 이야기했다. 언젠가부터 재즈 공연에 있어서만큼은 해외 연주자의 내한 공연보다 국내 연주자의 무대를 더 즐기게 됐다. 그리고 앞으로 이 땅에서 재즈가 대중들에게 더 즐거운 일이 될 거란 점괘는 바로 이런 무대를 근거로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있다. 피곤한 몸으로 비행기에서 내려 하루짜리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찍고' 가는 해외 유명 연주자들 덕분이 아니란 말이다. 물론 이 신세대들의 연주에는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갖고 있는 미완의 단점들은 '발전 가능성'의 다른 말일 뿐이다. 이는 한국 재즈, 혹은 어린 연주자들에 대한 관대한 시선이 결코 아니다. 이들의 연주를 오늘, 내일만 볼 게 아니기 때문에 갖는 그럴 듯한 기대감이다.
EBS Space 공감 2009년 12월 2일
오정수 어쿠스틱 듀오 오정수(g), 김창현(b)
오정수 일렉트릭 밴드 오정수(g), 배장은(k), 김지석(as), 최은창(b), 이도헌(d), 김민채(vo)
악기의 톤을 테크닉으로만 본다면 그건 키스를 글로 배운 것과 같다. 기타의 경우 손의 자세, 손톱의 모양, 탄현 방법 등 물리적인 요소들도 영향을 미치지만, 결국 좋은 톤을 만드는 건 8할이 음악에 대한 느낌을 살리는 일이다. 다른 악기도 방법이 다를 뿐 이치는 같다. 그렇기에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는 톤이란 그것이 어쿠스틱이거나 전자악기거나 상관없이 결국 음악을 만드는 요소로서 다르지 않다. 나아가 테크닉 또한 음악 위에서 만들어지기에 연주를 해보지 않은 대중들도 그 차이를 느끼게 되는 거다.
이날 EBS 스페이스 공감의 무대에는 좋은 작곡과 해석을 바탕으로 최선의 톤을 빚어낸 연주자가 있었다. 오정수는 명징한, 기억에 잘 남는 작곡을 보여준다. 이날 연주된 'Song for Nature'나 'New York' 같은 곡에서는 다이내믹하게 전환되는 구성과 리듬이 돋보였고, 대부분 유려한 멜로디 라인을 바탕으로 그 특징들을 잘 살린 솔로와 톤을 들려주었다.
공연은 베이시스트 김창현과의 어쿠스틱 듀오로 시작됐다. 오정수의 <Invisible Worth> 에 수록된 곡들이 연주됐는데 음반에서 조지 가존(George Garzon)이 연주한 주선율들을 오정수의 어쿠스틱 기타로 들을 수 있었다. 이후 배장은의 글루미한 피아노 전주와 오정수의 심장 고동소리 같은 기타효과음을 시작으로 피아노-기타 듀오의 'Throughout'이 연주됐다. 그에 이어진 즉흥연주부터는 최은창, 김지석, 이도헌 등이 가세한 밴드로 연주됐고, 중간에 객원보컬 김민채가 등장하는 등 다채로운 편성을 보여줬다.
연주는 후반으로 갈수록 재미를 더했지만, 'Throughout'부터 이어진 즉흥연주와 'The Weak' 까지의 연결에서는 관객들의 반응도 인상적이었다. 공연 프로그렘에는 'Throughout', 'Free Improvisation', 'The Weak'로 구분돼 있었는데, 오정수는 이 셋을 분위기 전환만으로 이어붙이면서 각각의 곡을 명확하게 마무리 짓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낯설음이었다. 다양한 공연을 많이 경험해도 그런 가능성을 이성적으로 머리에 넣고 있거나 혹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훈련된 감상자는 드물다. 관객들을 눈치9단으로 단련시켜주는 자유즉흥 또는 구성즉흥 무대라면 모를까, 이날의 관객들에게서 연주자의 의도에 대한 인사이트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곡들이 전환되며 이어지는 두 개의 공간에서 단 한명도 박수로 흐름을 끊지 않았다는 건 무척 고무적이었다. 짐작하건데 누군가 기침소리라도 냈다면 그것을 핑계 삼아 관객들은 참았던 박수를 터뜨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모두 두 번의 정적 속에서 오정수 밴드가 의도한 음악에 집중하며 침묵을 지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연주자들의 의도를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된 이러한 우연은 까치설날이나 화이트 크리스마스 같은---바란다고 해서 이뤄지지도 않고, 예측 후엔 틀리기 마련이며, 아니라도 즐거움을 망치진 않는---즐거움이었다고나 할까?
주목받는 뮤지션은 음악적 행보에 '발전'과 '변화',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성공하지 못하면 대중의 기대에서 이내 멀어지게 된다. 배우들이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것만큼이나 작품을 신중히 선택해서 이미지 변화를 꾀하고 영역을 넓히듯---하다못해 성형수술을 통한 '변신'도 '변화'로 봐주자.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대중이므로---재즈 또한 발전과 변화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생각이다. 변화는 발전의 의미를 포함하면서 그 이상으로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짧은 인생에서 발전보다는 변화의 한계점이 더 멀기 때문에 변화에는 시도의 의미도 반영될 수 있고 완성도에 대해 관대하기도 하다.
오정수는 이날 공연에서 두 가지 편성을 보여줬고, 그 자신이 곡마다 연주의 변화를 준만큼 다른 멤버들과 함께한 음악 색깔 또한 다양했다. 공연이 짧게 지나갔던 것은 다행히도 그런 의도된 변화가 관객들의 박수를 이끌어냈고 지루할 틈 없이 바뀌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사실 더 많은 걸 보여주려는 부담에서 자유로웠을, 예전에 마주한 클럽 공연에서 오정수는 더 인상 깊었다. 하지만 앞으로 오정수의 음악이 재즈 팬들을 '숨죽이게 할' 발전과 변화의 연속일 거라는 기대를 품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컬럼비아에서 나온 음반들만 박스셋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서 전부터 가지고 있던 컬럼비아 음반들을 정리했습니다. 일본에서 발매된 LP 미니어처 시리즈와 리마스터드 수입음반, 일반 수입음반, 그리고 Plugged Nickel 실황 박스셋으로 나눠서 팔았는데 번거롭지 않게도 한 사람이 모두 사갔죠. 게다가 중고로 판 돈이 새 박스셋을 사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남는 장사였다는 느낌은 안드네요. 일단 한 장 한 장 고민해가면서 사 모은 음반들에 묻어있는 제 손때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십수년 전에 샀고 감격스러워해가며 들었던 Bitches Brew 음반을 2CD 임에도 라이센스 음반이라는 이유로 일관 판매시의 '덤'으로 처릴 해버린 게 안타깝네요. 또, 8장짜리 Plugged Nickel 박스셋은 새로 살 박스셋에 고스란히 들어있을 걸로 믿고서 팔았는데, 새로 산 박스셋에는 한장짜리로 편집된 버젼이 들어가 있더군요.
재킷에 CD 가 들어있는지나 확인했을 뿐, 저걸 언제 다 듣겠다 싶습니다. 결국 괜한 짓을 한 것 같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마이클잭슨으로 시작해서 중학교 1학년 때 비틀즈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레드제플린으로 하드락을 듣게됐고, 건즈엔로지즈로 헤비메탈을 즐기게 됐죠. 그때는 지금처럼 음반을 많이 살 수 있는 형편도 못 됐고, 갖지는 못해도 검색을통해 간편하게 들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습니다.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노래들이 '발견'의 의미를 갖을 때습니다. 다양하게 많이알지는 못했지만 비틀즈, 레드제플린, 건즈엔로지즈만 알아도 록앤롤은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었습니다. 롤링스톤스를 몰라도비틀즈를 떠올리면 들리는 듯했고 딥퍼플을, 메탈리카를 몰라도 라디오에서 몇 곡만 듣고서도 전부인 양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서 고등학교 2학년 때쯤 스레쉬 메탈이란 걸 듣기 시작했죠. 빌보드엔 판테라가 있었고 한국엔 크레시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팝에서 시작해서 록큰롤, 하드록, 헤비메탈 이제 스레쉬 메탈까지, 점점 더 제 취향은 시끄럽고 자극적인 음악으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수학의 정석 I 뒤에 II 를 사게 되듯, 성문 기본 뒤에 종합이 순서인 것처럼 그 다음이 데스 메탈이겠거니 너무 당연시하며 카르카스나 네이팜데스 같은 음악이 라디오에서 나와줬으면 좋겠다며 책걸이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무렵에 롤링스톤스가 새음반 Voodoo lounge 을 발표했습니다. 그들과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된 비틀즈는 이미 한참 전에 해체되어 벌써 고전이라고 불리게 될만큼 옛 일이 됐습니다. 헤비메탈마저 전성기를 지나고 얼터너티브락이나 모던락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였죠. 그런데 결성된지 30년이 지난 그 나이에 록앤롤 새 음반을 낸다는 것이 에너지 넘치는 스레쉬 메탈을 듣던 저로써는나이드신 어르신들이 빨간 셔츠에 하얀 구두 신고 다니는 일처럼 비춰보였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죠. 내가 과연 몇살까지 이처럼자극저인 음악에 머릴 흔들어댈 수 있을까 하고요. 예음레코드 재즈 카탈로그를 집에 들고온 어느날 그 안에서 보게 된재킷 사진 속에서 뿔태 안경을 쓴 채 차분히 앉아 있는 백인 아저씨에게 이끌려 재즈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저는 롤링스톤스의 공연실황 DVD, shine a light 를 보고 있습니다. 빨간 셔츠와 흰구두처럼 보였던 voodoo lounge 가 발표되고 햇수로 15년이 더 지나서도 방방 뛰어다니며 그 어떤 밴드들보다 섹시한 스타일과 연주로 무대를 누비는 걸 보고있습니다. 나이들면 락이 빨간 셔츠 같은 게 될꺼라는 생각은 착각이었습니다. 그런 착각을 할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사고 싶은음반들을 돈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게 되었고, 음악은 여전히 갖고 싶은 것이지만 검색해서 들어볼 수 있을만큼 가벼워졌고,라디오는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거나 다름 없습니다.)
많이 변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락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어떤 착각으로인해 재즈를 만나게 된 것도 참 다행입니다.
그런데 트랜스포머도 그랬지만 '지아이조' 또한 만화를 전혀 답습하고 있지 않습니다. 80년대 만화가 내다볼 수 있는 미래 기술과 현재의 표현 능력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어 그런 건지도 모르겠군요. 그럼에도 '지아이조'는 너무나 만화같은 영화가 되었습니다. 대놓고 리얼리티를 무시하는 내용 전개와 컴퓨터 그래픽이 차라리 그냥 만화를 본다는 마음을 갖도록 하였으니까요.
어린 시절에 보던 만화에 대한 향수도 한 몫을 했지만 이병헌의 출연이 결정적으로 이 영화를 보도록 한 계기가 됐습니다. 이병헌이 연기한 '스톰 쉐도우'는 비중이 작은 케릭터는 아니었지만 어딘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헐리우드 영화 속의 비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과거 '스피드 레이서'와 곧 개봉할 '닌자 어세신'에 출연한 가수 비와 비교를 해볼 수도 있겠죠. '닌자 어세신'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스피드 레이서'를 본 관객들의 비에 대한 반응은 별로 비중있는 역할이 아니었는 데 반해 큰 기대를 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비교했을 때 '지아이조'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스톰 쉐도우의 역할 비중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있습니다. 일단 이병헌의 별로 많지 않은 대사가 (대부분 영어 단문 이었고 복문의 대사는 극히 드물었다.) 오버더빙으로 처리된 것 같다는 점도 그렇고, 액션 장면이 많을 뿐 전체 스토리 빌딩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등장인물입니다. 결말에 스네이크 아이와의 대결에서 죽는 것처럼 처리됐지만 원작 만화에서의 스톰 쉐도우 캐릭터가 꽤 자주 등장한다는 걸 생각했을 때, 비단 영화가 만화를 답습하지 않고 있다고 앞서 이야기했지만, 다음편에서 과연 이병헌이 스톰 쉐도우로 다시 등장하게 될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굳이 오버더빙까지 해줘야 하고 스토리빌딩에 참여하지 못하는 케릭터를 위해 죽은 것처럼 처리된 등장인물을 또다시 살려내려 할까요?
그의 역할에 대한 아쉬움은 비중이 있는 듯 기실 별로 없다는 것 말고 한가지 더 있습니다. 가수 비의 예를 다시 들어보면, 비의 경우 한국영화에서 이렇다할 작품이 없는 배우로 한국영화든 미국영화든 그냥 그 자체로 판단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병헌의 경우 이미 한국영화에서 자릴 잡은 배우로써 좋은 평을 받은 작품들도 여럿 있기 때문에 헐리우드 영화에 출연해서 비중을 얼마나 차지하고 있느냐를 따지고 있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입니다. 비는 한국영화에서 용머리가 된 적 없으니 헐리우드 영화에서 뱀꼬리가 되어도 그 출연한 것 자체에 의미를 두면 되겠죠. 그러나 이병헌의 경우 용머리의 모습과 비교했을 때 뱀꼬리의 모습이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중견배우입니다.
악역이라도 앞으로의 '지아이조' 시리즈에서 계속 출연한다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 마냥 좋겠습니다만, 뱀꼬리 하느라 가랑이 찢어지느니 한국영화에서 용머리 되면 좋겠습니다. 간신히 본선 진출하는 거에 의미두고서 그 많은 응원을 불러내는 월드컵 대표팀 응원보다 국내 K 리크 응원하는 것이 축구발전이나 선수 개개인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네요.
LIG ArtHall 2009년 6월 23일
2009 리더스 폴
배장은(p), 최은창(b), 크리스 바가(d), 손성제(s), 최우준(g)
프로그램을 받아든 순간 13곡이나 되는 곡 목록을 보면서 이날 공연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그림이 그려졌다. 시작되지도 않은 공연을 곡의 양으로 판단하는 것이 섣부른 생각이긴 하다. 하지만 연주되는 곡이 많다고 해서 마냥 좋은 공연이 될 리는 없고, 조용필이나 팻 메시니처럼 세 시간쯤 내리 음악을 쏟아내며 청중을 즐거움에 지치게 만드는 경우를 아무 때나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이날의 연주자들이 서로 여러 차례 협연을 해왔겠지만, 리더스 폴 공연을 위해 일시적으로 모여 “V.S.O.P.”를 펼치는 올스타밴드인 걸 생각했을 때 기대 반 의심 반의 마음일 수밖에 없었다.
라이징 스타 2009의 오프닝 무대로 공연이 시작됐다. 지난 6월의 “퓨처스 앙상블 2009” 공연을 통해 워낙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연주자들이어서 연주를 들으며 공연 시작 전의 우려를 잊어버린 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로 연주된 ‘Autumn Leaves’에서 트럼펫과 색소폰이 주고받으며 진행되는 리듬의 변화와, 템포를 바꿔가며 진행되는 피아노 변주들은 스탠더드 곡들이 수도 없이 곱씹어 연주되어도 재즈를 재즈답게 즐길 수 있게 하는 그들만의 모습이었다. 좀 생뚱한 비유지만 할 일 없는 주말에 만화책 수십 권을 옆에 쌓아놓고 누운 채 그 첫 권을 펼쳤을 때의 기분이랄까. 앞으로 즐길 거리가 얼마든지 많다는 풍족한 인상을 주는 오프닝이었다.
2009 리더스 폴 수상자들의 첫 곡은 칙 코리아의 ‘Windows'였다. 배장은의 최근 음반 <Go>의 첫 곡이기도 한데, 음반에서는 들을 수 없는 피아노 인트로가 있었다. 무대에 홀로 오른 배장은의 인트로는 그녀가 어떻게 다른지를 말할 수 있을만한 연주였다. 그런 연주에 청중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를 보인 최은창과 크리스 바가는 인트로가 끝날 무렵 무대에 등장했고, 이내 트리오 편성으로 곡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곡이 끝날 무렵, 십여 곡의 곡목들을 보며 내용면에서 허술한 공연이 될지 모르겠다는 단편적인 우려가 다시 떠올랐다. 성급하게 마무리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더 즐길 게 나와 줘야 할 것 같은 아쉬움은 이어서 연주된 ‘Propose’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최우준의 기타는 다시 한 번 절정을 향해 치달아야 한다고 느낀 순간 끝나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더 듣고 싶은 욕심 때문에 그렇게 들렸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곡 진행상의 아쉬움을 제쳐놓고 생각해도, 이날 연주된 곡들은 대개 연주자를 소개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었으며, 진면목을 보여주는 연주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연주자 개개인에 대해서는 인상 깊은 요소들이 곳곳에서 보이기는 했다. ‘Chicken’을 연주하면서 기타 현 위에서 핑거링, 피킹, 스트로킹 같은 통상적인 주법 말고도 비비고 때리고 긁기도 하는 최우준의 연주는 그가 기타라는 도구적인 틀을 넘어섰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마치 ‘식사’라는 곡을 연주할 때마다 하는 ‘밥 숟가락질’을 우리가 주법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건 기타를 긁고 때리는 연주 자체가 특이하게 보일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Moody's Mood For Love’에서 화려하면서도 다 보이지 않고 약간은 감춰진 듯한 배장은의 인트로는 또 한 번의 감명을 주었다. 콘트라베이스건 일렉트릭 베이스건 균형 있게 좋은 연주를 들려주는 최은창은 공연 내내 여러 연주자들의 다양한 곡에서 그 자신의 역할을 말해주는 연주를 펼쳤다. 자신의 곡 ‘Carla’를 연주하기에 앞서 그는 한국의 재즈 무대에서 여러 연주자들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평가로 이 자리에 선 것이며, 그것이 스스로에게도 기분 좋은 일임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리더스 폴 2009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강대관 선생은 대한민국 재즈 1세대로서, 손자뻘 되는 3세대 연주자들과 ‘Summertime’을 협연했다. 마치 마일즈 데이비스가 초기 재즈 록 시절에 선보였던 스타일을 연상시킨 이 연주는 상대적으로 짧은 듯했지만 이날 공연에서 선보인 곡들 중에서 그 의미상 가장 흐뭇하고 멋진 순간이었다.
필자가 꾸준히 응원하는 종목은 재즈밖에 없다. 그러기에 스포츠 팬들이 농구나 야구의 올스타전을 구경 가는 느낌을 약간은 갖고 있었다. 그런데 리더스 폴이라는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이날의 공연을 마련한 재즈 팬들은, 결국 이 연주자들이 무언가 진한 승부를 내길 원했던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경기 내용이 대체로 싱거웠다는 이야길 하고 있기에 스스로 재즈 팬이 맞는지 헷갈려하고 있기도 하다. 또 모두 일어나서 응원을 하고 있을 때 팔짱 끼고 앉아서 분위기 망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올스타전을 즐기는 법, 그건 흥겨운 축제를 즐기는 기분과 같다는 걸 안다. 하지만 팽팽하게 전개되는 긴장감은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요구할 수 있는 재즈 팬의 권리다. 마음만 먹었으면 그걸 충분히 해낼 연주자들이었다는 걸 잘 알기에 하는 소리다.
| 마이클잭슨의 발견은 다락방에서 찾아낸 잡동사니 같은 거였습니다. 그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아버지의 서재에 가면 오래된 잡동사니들이 많이 쌓여있어서 당신의 옛날 물건들을 뒤지며 놀곤 했었죠. 그러다가 오래된 카세트테이프(MC)들을 발견했을 땐 그 안에 뭐가 들어있나 재생해보기도 했는데 저의 더 어릴 적 목소리 같은 것들이 녹음되어있었어요. (요즘은 캠코더로 아이들을 녹화하지만 그시절엔 카세트로 아이들은 녹음했나보죠.) 그때 그 MC들 사이에서 마이클잭슨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녹색 라벨이 붙어있던 MC 는 해적판 짬뽕이었는데, 주로 엘범 <Thriller> 의 곡들 위주였죠. 그리고 얼마후 저는 제 인생 최초로 용돈으로 엘범을 사게 됩니다. 그게 바로 <BAD> 였어요. (이때 산 MC 는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팝송이라고는 누나가 듣던 Whitney Huston 이랑 초코렛 광고와 영웅본색으로 유명했던 장국영 말고는 몰랐던 제게 엄청난 충격이었죠. 마침 6학년이 되면서 아버지께서 일본에 다녀오시면서 AIWA 카세트 재생기를 사다주셨고 그때부터 아주 불나기 시작했죠.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초등학교 수학여행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BAD> 를 듣던 기억입니다. 돌아올 때 한밤중에 비가 왔는데 제가 젤 좋아하는 'Man in the mirror' 라는 곡이 틀어져나오던 창밖 도로 풍경이 아직도 보이는 것만 같아요. |
이젠 상당히 많아진 컬렉션들의 일부로 MC 가 아닌 LP 와 CD 로도 마이클 잭슨의 음반들을 가지고 있어서 몇 년에 한 번 들을까 말까에 자켓 사진이 눈에 스칠 일도 드뭅니다. 또 제가 그의 내한공연 때 애써 찾아갔던 것도 아니고 광적으로 그를 좋아해서 프로필을 외고 다니거나 자료를 수집하거나 한 적도 없었죠. 그렇지만 마이클 잭슨이 단지 컬렉션의 최초 시작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란 것, 그건 바로 어제 마이클 잭슨이 죽기 전에도 너무 진하게 알고 있던 사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