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2월 5일 EBS SPACE 공감에서의 송준서 트리오의 "강렬한 자화상"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3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2010년 2월 5일 EBS SPACE 공감
송준서(피아노), 김인영(베이스), 정승우(드럼)
2008년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는 피아니스트들이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연주한 연간 기획 시리즈 "재즈, 클래식을 품다"가 펼쳐졌다. 그 마지막 무대였던 "근현대 음악"의 피아니스트 송준서는 다른 연주자들과 어딘가 달랐다. 네 명의 여성 피아니스트들 속에서 남자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나, 그가 다뤘던 현대음악의 상대적 낯설음도 분명 작용했을 거다. 잠시 생각해보면 '자화상'이란 다분히 회화적인 소재다. 그림이 종교나 왕권을 표현하던 수단이었을 때도, 자기 자신에 대한 표현이 금기시됐거나 억압됐을 때도 화가들은 자화상을 그렸다. 그만큼 "나를 어떻게 표현할까"에 대한 고민이 강하게 묻어난 것이 자화상이다. 송준서의 자화상 같았던 이 무대는 어렴풋했던 그의 색깔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스퍼트까지 숨차게 달리는 듯한 그의 연주는 예쁘기보단 힘 있고 굵직한 리듬과 멜로디가 묵직한 터치로 가득 채워졌다. 'Windows'나 'Spain'이 포함돼 있기도 했지만 칙 코리아나 곤잘로 루발카바 같은 부피감과 섬세함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원곡 스타일의 피아노 독주로 마무리해 대비 효과를 준 쇼팽의 'Preludes No.4 in E minor'에서 그런 특징이 두드러졌는데, 국내에서 보지 못했던 스타일을 만나게 된 반가운 느낌이었다. 그의 즉흥연주에선 귀에 익은 클래식 멜로디들이 들키지 않을 만큼 들리기도 했다. 송준서는 클래식뿐 아니라 다양한 음악을 소재로 자신의 색깔을 표현해내는 연주자다.
솜씨 좋은 사람이라도 음악을 글로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다시 오지 않는 순간에 대한 공연리뷰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특히 이 날처럼 인상 깊은 연주를 접했을 땐 한 장의 앨범을 건네주듯 그 느낌을 재현할 수 없음이 큰 아쉬움이다. 그런데 EBS 스페이스 공감의 공연에 대해서는 그게 가능하다. 녹화된 방송을 보는 방법도 있고 다시보기도 있기 때문이다. 송준서의 <Portrait> 앨범 레퍼토리로 연주된 공연이었지만 앨범과 또다른 맛이 있었다. 본방사수로 필자와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최근 음반 시장에 유행 중 하나가 박스셋입니다. 도이치 그라마폰 111주년 기념 박스셋, 블루노트 70주년 박스셋 처럼 특정 레이블에서 만들어낸 박스셋이 있는가 하면, 비틀즈 리마스터 전집, 마일즈 데이비스 콜럼비아 전집, 가장 최근의 정경화 40주년 기념 전집 등 특정 뮤지션들의 전작 컬렉션 박스셋들도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들은 유명 레이블을 대표하는 음반들의 모음이거나 음악적 시기나 장르를 통째로 대표할만큼 유명한 뮤지션의 음반들이기 때문에 그만큼 홍보도 많이 이뤄지고 예약판매까지 이뤄질만큼 인기가 좋죠.
정경화 데카 데뷔 40주년 기념반
반면 알게 모르게 시장에 나오는 박스셋 또는 그에 준하는 세트 기획상품들도 있습니다. 이들 중 우리나라에 수입조차 되지 않은 것들도 적지않습니다. 예를 들면 작년에 40주년을 맞은 '69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다양한 패키지 구성의 박스셋이 출반됐죠. 이경우는 우리나라에도 감독판 DVD,
편집된 LP 또는 CD 세트 정도가 들어와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더 화려하고 다양한 구성으로 기획되어 발매되었죠. 또다른 예시로 Pixies 의 박스셋 Minotaur 와
Henry Cow 40주년 박스셋이 있는데, 이미 전작 컬렉션을 둔 상태임에도 개인적으로 무척 갖고 싶은 박스셋들이지만 둘 다 가격이 상당하기 때문에 엄두를 못내고 있죠. 이런 전작 컬렉션 박스셋까진 못되더라도 뮤지션을 대표하는 3 장의 음반을 묶은 트릴로지Trilogy 박스셋들도 있는데 그런 것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적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이랬던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세트 구성을 이루는 기획음반들이 최근에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경향을 알게 해줍니다.
Woodstock: 3 Days of Peace & Music Director's Cut
Pixies "Minotaur"
박스셋 상품들 중 차라리 잘 알려지진 않았고 게다가 고가이기까지하지만 팬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경우는 다릅니다만, 유행 같은 저가형 박스셋 발매는 씁쓸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음반 시장이 끝물 장사를 떨이로 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이 매우 짙기 때문이죠. 그래서 마치 폐업 정리 세일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Pat Metheny 의 새 음반이 발매됐습니다. 참 대단한 상상력이다 싶지만, 어쨌든지 음악이 좋아야 하는 겁니다. 눈으로 봤을 때 신기하다고 현혹되어 좋아한다면 그로써는 써커스를 한 샘이 되고 스스로 오욕이라 여기겠죠. 언제던 누구던 음악이 실망시키면 있는 그대로 실망할 겁니다.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던 확률적인 믿음만 있을 뿐이죠. 그러니 새로운 "Orchestrion" 도 어서 음반으로 음악을 들어봐야 할 일인데 말입니다. 수입음반이 아직 들어오질 않아서 기다리는 중입니다. 공연은 티켓 오픈하자마자 예매했고요.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두 번 녹음했습니다. 그래서 말러 전집이 도이치 그라마폰에서 하나, 소니에서 하나 이렇게 두개 존재하죠. 이중 DG 녹음은 구스타프 말러 녹음들을 통털어서 가장 좋은 평을 듣는 음반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소니에서 나온 전집보다 대중들의 선호도가 높은 건 당연하고요.
그런데 DG 전집도 두가지 버젼이 있습니다. 16CD 가 박스로 된 게 있고 나중에 나온 건 사진에서처럼 6CD, 5CD, 5CD 로 세개의 박스로 나뉘어서 판매되며 가격도 더 싸졌습니다. 그래서 흔히들 버짓budget 전집이라고 라고 부르죠. 내용도 음원도 같고 박스 디자인만 다르며, 버짓 세트와 마찬가지로 세개의 박스로 구성된 걸 아웃케이스로 씌운 것이 오리지날 전집세트죠. 오리지널 전집에는 꽤 두꺼운 해설집 하나가 더 들어있는데, 버짓 전집에는 해설집이 각각의 박스에 따로따로 들어있는 것도 차이점입니다. 오리지널 전집은 번스타인과 말러가 마주하고 있는 흑백 인쇄가 꽤 멋있지만 가격 차이가 몇 만원 나기 때문에 이름 그대로 버짓 전집이 실리적인 선택이죠.
소니뮤직에서 나온 말러 전집은 작년 2009년에 리마스터링 되어 10만원도 안하는 가격에 12CD 로 재발매 되었습니다. 셋 다 구하기 어렵습니다.
바이얼리니스트 정경화의 데뷔 40주년 기념 전집이 나왔습니다. 5천개 한 정 약 한 달 전부터 예약주문을 받았다는데 예약주문으로만 3천개 정도가 팔렸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클래식을 매우 즐기는 건 아닙니다. 정경화에 대한 흥미는 있었지만 사고 싶은 음반들은 언제나 넘쳐나기 때문에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있었죠. 그런데 이번 전집 발매는 구매를 위한 우선순위를 앞으로 껑충 뛰어오르기에 충분했어요.
첫번째 이유는 피아니스스 백건우의 베토벤 소나타 전집 박스셋의 한정발매에 대한 전례입니다. 더이상 구할래야 구할 수도 없고 워낙 소강가치가 높다보니 중고시장에도 나오질 않습니다. 나오더라도 가격이 상당해서 왠만큼 바라지 않고서야 새 걸 살 때만큼의 구매력을 발휘하긴 어렵겠죠. 이번 정경화 전집도 5천개 한 정이기 때문에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야 했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가격입니다. 19장의 CD 와 1장의 DVD 로 구성된 전집의 정가가 163,700원 입니다. 물론 온라인 할인가에 각종 쿠폰 등을 더하면 13만원 정도에 살 수도 있죠. 그녀의 데타 레이블 전작 컬렉션을 하려면 그보다 두배 이상의 돈이 들 게 뻔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도 구매력을 자극하죠. 전집을 사지 않고서 맘에 드는 것만 샀을 때 7,8 장 정도만 골라도 전집의 가격이 돼버립니다. 물론 절판되어 개별적으로 구할 수 없는 음반도 있으니 그걸 세번째 이유로 삼아도 되겠죠.
다른 이유는 개봉을 하면 알게 됩니다.
구성은 두꺼운 화보집 하나와 세 개의 gate-folded 재킷으로 되어있고, 각각의 재킷에는 미디어 20장이 한가득 나뉘어 꽂혀있습니다. 화보집은 한글과 영어로 설명된 내용들과 다양한 사진들이 수록되어있고 꽤 잘 만들어져있습니다.
올해 5월 4일 예술의 전당에서 정경화 협연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습니다. 손가락 부상 이후 5년만의 무대 복귀라죠. 왠만한 표 값이 정경화 전집 하나보다 비쌉니다.
이 글은 지난 1월 5일 EBS SPACE 공감에서의 "얘들아, 재즈를 부탁해"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2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2010년 1월 5일 EBS SPACE 공감
김인영(베이스), 홍성윤(기타), 한웅원(드럼), 박진영(피아노), 강채리(피아노)
작년 재즈피플 12월호에 "재즈야, 우리 아이를 부탁해"라는 기획특집이 실렸다. 글을 쓴 재즈비평가 김현준은 자라섬국제재즈콩쿨의 결선 무대에서 만난 두 어린 피아니스트 박진영과 강채리를 조명하며 그들이 자라왔고 앞으로 자라날 우리 환경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들을 던졌다. 그리고 그가 기획의원으로 있는 EBS 스페이스 공감은 이 글의 제목을 반전시킨 "얘들아, 재즈를 부탁해 - 미래를 짊어진 한국의 재즈 악동들" 이란 타이틀의 공연으로 2010년 첫 무대를 꾸몄다. 지면을 통해 보여줄 수 없던 부분을 메워주려는 기획의도가 엿보였다. 한국 재즈에 대한, 그 미래를 책임질 연주자들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은 채 말이다.
박진영과 강채리 뿐 아니라 작년과 올해 재즈피플의 "라이징 스타"로 선정된 한웅원, 김인영, 홍성윤 등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한국 재즈의 미래를 짊어질 연주자들이 물론 이들 뿐은 아닐 것이다. 김인영, 홍성윤, 박진영, 강채리는 자라섬국제재즈콩쿨의 결선에 오른 연주자들이고, 한웅원은 작년 재즈피플이 선정한 라이징 스타 중 한 명이다. 공연은 의도한 듯 다양하게 계획된 편성을 통해 모두의 개성을 잘 보여주었고, 한국 재즈의 미래를 조망해보는 기분을 갖게 했다. 말하자면 신년 사주팔자랄까.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이날처럼 이렇게 다양한 앙상블을 다시 만나면서 흐뭇했던 점괘를 떠올리게 되길 바란다.
보틀렉 슬라이드 기타로 스타일리쉬하게 시작된 에스베욘 스벤숀의 'Tide of Trepidation'이 공연의 첫 순서였다. 개성 있는 편곡에 이어 기타리스트 홍성윤은 자작곡인 'Not Yet'을 들려주었는데, 15박자의 이 곡도 그랬지만 이후 다른 이들과의 연주에서도 독특하고 인상적인 박자감각을 선보였다. 그의 트리오 멤버인 정진욱과 김민찬의 연주도 단 두 곡으로 그치기엔 아쉬울 만큼 좋았다. 쿨한 소리를 많이 알고 있는 듯한 드러머 한웅원은 능청스럽고 장난기 어린 잔재미까지 더해줬고, 최근 들어 수차례 무대를 접하면서 드디어 보잉을 처음 들려준 베이시스트 김인영의 독주 'Bye Bye Blackbird' 또한 인상 깊었다.
피아노 솔로를 사이에 두고 연결된 접속곡 형태의 'King of Spade/Queen of Heart'에서 박진영은 후반으로 갈수록 곡의 구성 면에서 극적인 맛을 더해가는 작곡과 연주를 보여줬다. 뒤에서 독주로 연주된 강채리의 'Hand Stand'가 때 묻지 않은 소녀의 감성으로 완성됐다면 박진영의 감성은 상대적으로 음울하다. 왠지 그 모습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나이이기에 어색해 보이기도 했지만, 국내에선 이런 지향을 가진 연주자가 많지 않아 그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데 음악적인 강점이 될 수 있겠다. 한 대의 피아노로 박진영과 강채리가 함께한 즉흥연주는 연주 자체의 완성도보다 그들 각자의 개성을 대조해보는 기회가 됐다. 미려한 멜로디보단 무거운 감성과 곡의 구성적인 면에 강점을 드러내는 박진영이 피아노의 왼편에, 스윙 감각이 돋보이는 발랄한 강채리가 오른편에서 연주하여 이 두 피아니스트들의 서로 다른 개성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제 막 자아가 완성돼 가는 10대들이 과연 한국이란 나라에서 개성을 발산하는 게 가능한지 갸우뚱해지지만, 아이들에게 똑같은 억양의 웅변을 쏟아내도록 가르쳐놓고 그 안에서 옥석을 기대하던 게 이젠 옛날 일이구나 싶어 반가웠다.
필자는 작년 "퓨쳐스 앙상블 2009"의 공연 리뷰에서 어느새 정착된 한국의 재즈교육 환경과 거기에서 자라난 세대에 대해 설레는 기대감을 이야기했다. 언젠가부터 재즈 공연에 있어서만큼은 해외 연주자의 내한 공연보다 국내 연주자의 무대를 더 즐기게 됐다. 그리고 앞으로 이 땅에서 재즈가 대중들에게 더 즐거운 일이 될 거란 점괘는 바로 이런 무대를 근거로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있다. 피곤한 몸으로 비행기에서 내려 하루짜리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찍고' 가는 해외 유명 연주자들 덕분이 아니란 말이다. 물론 이 신세대들의 연주에는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갖고 있는 미완의 단점들은 '발전 가능성'의 다른 말일 뿐이다. 이는 한국 재즈, 혹은 어린 연주자들에 대한 관대한 시선이 결코 아니다. 이들의 연주를 오늘, 내일만 볼 게 아니기 때문에 갖는 그럴 듯한 기대감이다.
이 글은 지난 12월 2일 EBS 스페이스공감에서의 오정수밴드 공연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2010년 1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EBS Space 공감 2009년 12월 2일 오정수 어쿠스틱 듀오 오정수(g), 김창현(b) 오정수 일렉트릭 밴드 오정수(g), 배장은(k), 김지석(as), 최은창(b), 이도헌(d), 김민채(vo)
악기의 톤을 테크닉으로만 본다면 그건 키스를 글로 배운 것과 같다. 기타의 경우 손의 자세, 손톱의 모양, 탄현 방법 등 물리적인 요소들도 영향을 미치지만, 결국 좋은 톤을 만드는 건 8할이 음악에 대한 느낌을 살리는 일이다. 다른 악기도 방법이 다를 뿐 이치는 같다. 그렇기에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는 톤이란 그것이 어쿠스틱이거나 전자악기거나 상관없이 결국 음악을 만드는 요소로서 다르지 않다. 나아가 테크닉 또한 음악 위에서 만들어지기에 연주를 해보지 않은 대중들도 그 차이를 느끼게 되는 거다.
이날 EBS 스페이스 공감의 무대에는 좋은 작곡과 해석을 바탕으로 최선의 톤을 빚어낸 연주자가 있었다. 오정수는 명징한, 기억에 잘 남는 작곡을 보여준다. 이날 연주된 'Song for Nature'나 'New York' 같은 곡에서는 다이내믹하게 전환되는 구성과 리듬이 돋보였고, 대부분 유려한 멜로디 라인을 바탕으로 그 특징들을 잘 살린 솔로와 톤을 들려주었다.
공연은 베이시스트 김창현과의 어쿠스틱 듀오로 시작됐다. 오정수의 <Invisible Worth> 에 수록된 곡들이 연주됐는데 음반에서 조지 가존(George Garzon)이 연주한 주선율들을 오정수의 어쿠스틱 기타로 들을 수 있었다. 이후 배장은의 글루미한 피아노 전주와 오정수의 심장 고동소리 같은 기타효과음을 시작으로 피아노-기타 듀오의 'Throughout'이 연주됐다. 그에 이어진 즉흥연주부터는 최은창, 김지석, 이도헌 등이 가세한 밴드로 연주됐고, 중간에 객원보컬 김민채가 등장하는 등 다채로운 편성을 보여줬다.
연주는 후반으로 갈수록 재미를 더했지만, 'Throughout'부터 이어진 즉흥연주와 'The Weak' 까지의 연결에서는 관객들의 반응도 인상적이었다. 공연 프로그렘에는 'Throughout', 'Free Improvisation', 'The Weak'로 구분돼 있었는데, 오정수는 이 셋을 분위기 전환만으로 이어붙이면서 각각의 곡을 명확하게 마무리 짓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낯설음이었다. 다양한 공연을 많이 경험해도 그런 가능성을 이성적으로 머리에 넣고 있거나 혹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훈련된 감상자는 드물다. 관객들을 눈치9단으로 단련시켜주는 자유즉흥 또는 구성즉흥 무대라면 모를까, 이날의 관객들에게서 연주자의 의도에 대한 인사이트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곡들이 전환되며 이어지는 두 개의 공간에서 단 한명도 박수로 흐름을 끊지 않았다는 건 무척 고무적이었다. 짐작하건데 누군가 기침소리라도 냈다면 그것을 핑계 삼아 관객들은 참았던 박수를 터뜨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모두 두 번의 정적 속에서 오정수 밴드가 의도한 음악에 집중하며 침묵을 지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연주자들의 의도를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된 이러한 우연은 까치설날이나 화이트 크리스마스 같은---바란다고 해서 이뤄지지도 않고, 예측 후엔 틀리기 마련이며, 아니라도 즐거움을 망치진 않는---즐거움이었다고나 할까?
주목받는 뮤지션은 음악적 행보에 '발전'과 '변화',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성공하지 못하면 대중의 기대에서 이내 멀어지게 된다. 배우들이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것만큼이나 작품을 신중히 선택해서 이미지 변화를 꾀하고 영역을 넓히듯---하다못해 성형수술을 통한 '변신'도 '변화'로 봐주자.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대중이므로---재즈 또한 발전과 변화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생각이다. 변화는 발전의 의미를 포함하면서 그 이상으로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짧은 인생에서 발전보다는 변화의 한계점이 더 멀기 때문에 변화에는 시도의 의미도 반영될 수 있고 완성도에 대해 관대하기도 하다.
오정수는 이날 공연에서 두 가지 편성을 보여줬고, 그 자신이 곡마다 연주의 변화를 준만큼 다른 멤버들과 함께한 음악 색깔 또한 다양했다. 공연이 짧게 지나갔던 것은 다행히도 그런 의도된 변화가 관객들의 박수를 이끌어냈고 지루할 틈 없이 바뀌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사실 더 많은 걸 보여주려는 부담에서 자유로웠을, 예전에 마주한 클럽 공연에서 오정수는 더 인상 깊었다. 하지만 앞으로 오정수의 음악이 재즈 팬들을 '숨죽이게 할' 발전과 변화의 연속일 거라는 기대를 품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70CD + 1DVD 로 구성된 Miles Davis The Complete Columbia Album Collection 을 샀습니다. 전에도 컬렉션 중에 마일즈 데이비스가 가장 많았지만 이제는 다른 뮤지션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압도적인 게 되버렸네요.
컬럼비아에서 나온 음반들만 박스셋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서 전부터 가지고 있던 컬럼비아 음반들을 정리했습니다. 일본에서 발매된 LP 미니어처 시리즈와 리마스터드 수입음반, 일반 수입음반, 그리고 Plugged Nickel 실황 박스셋으로 나눠서 팔았는데 번거롭지 않게도 한 사람이 모두 사갔죠. 게다가 중고로 판 돈이 새 박스셋을 사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남는 장사였다는 느낌은 안드네요. 일단 한 장 한 장 고민해가면서 사 모은 음반들에 묻어있는 제 손때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십수년 전에 샀고 감격스러워해가며 들었던 Bitches Brew 음반을 2CD 임에도 라이센스 음반이라는 이유로 일관 판매시의 '덤'으로 처릴 해버린 게 안타깝네요. 또, 8장짜리 Plugged Nickel 박스셋은 새로 살 박스셋에 고스란히 들어있을 걸로 믿고서 팔았는데, 새로 산 박스셋에는 한장짜리로 편집된 버젼이 들어가 있더군요.
재킷에 CD 가 들어있는지나 확인했을 뿐, 저걸 언제 다 듣겠다 싶습니다. 결국 괜한 짓을 한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재즈를 듣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입니다. 그 시작이 된 두가지 계기가 있었죠. 하나는 단골 음반가게에서 얻은예음레코드 재즈 카달로그였습니다. 그 안에 있던 음반 재킷들이 제게 뭔가 말을 걸고 있는 듯 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가 롤링스톤스 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마이클잭슨으로 시작해서 중학교 1학년 때 비틀즈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레드제플린으로 하드락을 듣게됐고, 건즈엔로지즈로 헤비메탈을 즐기게 됐죠. 그때는 지금처럼 음반을 많이 살 수 있는 형편도 못 됐고, 갖지는 못해도 검색을통해 간편하게 들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습니다.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노래들이 '발견'의 의미를 갖을 때습니다. 다양하게 많이알지는 못했지만 비틀즈, 레드제플린, 건즈엔로지즈만 알아도 록앤롤은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었습니다. 롤링스톤스를 몰라도비틀즈를 떠올리면 들리는 듯했고 딥퍼플을, 메탈리카를 몰라도 라디오에서 몇 곡만 듣고서도 전부인 양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서 고등학교 2학년 때쯤 스레쉬 메탈이란 걸 듣기 시작했죠. 빌보드엔 판테라가 있었고 한국엔 크레시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팝에서 시작해서 록큰롤, 하드록, 헤비메탈 이제 스레쉬 메탈까지, 점점 더 제 취향은 시끄럽고 자극적인 음악으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수학의 정석 I 뒤에 II 를 사게 되듯, 성문 기본 뒤에 종합이 순서인 것처럼 그 다음이 데스 메탈이겠거니 너무 당연시하며 카르카스나 네이팜데스 같은 음악이 라디오에서 나와줬으면 좋겠다며 책걸이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무렵에 롤링스톤스가 새음반 Voodoo lounge 을 발표했습니다. 그들과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된 비틀즈는 이미 한참 전에 해체되어 벌써 고전이라고 불리게 될만큼 옛 일이 됐습니다. 헤비메탈마저 전성기를 지나고 얼터너티브락이나 모던락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였죠. 그런데 결성된지 30년이 지난 그 나이에 록앤롤 새 음반을 낸다는 것이 에너지 넘치는 스레쉬 메탈을 듣던 저로써는나이드신 어르신들이 빨간 셔츠에 하얀 구두 신고 다니는 일처럼 비춰보였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죠. 내가 과연 몇살까지 이처럼자극저인 음악에 머릴 흔들어댈 수 있을까 하고요. 예음레코드 재즈 카탈로그를 집에 들고온 어느날 그 안에서 보게 된재킷 사진 속에서 뿔태 안경을 쓴 채 차분히 앉아 있는 백인 아저씨에게 이끌려 재즈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저는 롤링스톤스의 공연실황 DVD, shine a light 를 보고 있습니다. 빨간 셔츠와 흰구두처럼 보였던 voodoo lounge 가 발표되고 햇수로 15년이 더 지나서도 방방 뛰어다니며 그 어떤 밴드들보다 섹시한 스타일과 연주로 무대를 누비는 걸 보고있습니다. 나이들면 락이 빨간 셔츠 같은 게 될꺼라는 생각은 착각이었습니다. 그런 착각을 할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사고 싶은음반들을 돈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게 되었고, 음악은 여전히 갖고 싶은 것이지만 검색해서 들어볼 수 있을만큼 가벼워졌고,라디오는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거나 다름 없습니다.)
많이 변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락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어떤 착각으로인해 재즈를 만나게 된 것도 참 다행입니다.
여름에 하려고 했던 기타 콘서트를 10월 10일 가을에 하게 됐습니다. 원래는 잔디밭 정원에서 하려고 밤이 춥지 않은 여름에 할 생각이었던 건데 한동안 무척 바빠서 연습을 할 수 없었죠. 사실 지금도 좀 무리스럽긴 하지만 더 늦어지면 안될 것 같아서 최대한 빠른 시간으로 잡은 것이 10월 10일이 되었네요. 날짜, 시간, 장소, 그리고 연주할 레퍼토리까지 모두 정해졌습니다. 한 곡은 갖고 있는 악보의 편곡이 맘에 안들어서 어제 해외 주문을 넣었는데 도착하기까지 2주가량 걸릴 껄 생각하면 연습할 시간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저의 어린 시절에 무척 감명깊게 본 TV만화 시리즈 두 편이 영화화 되었습니다. 하나는 벌써 두번째 시리즈가 개봉된 '트랜스포머'고 또 하나는 최근 개봉한 '지아이조'(G.I.Joe) 죠. 둘 다 만화에 등장하는 장난감 피규어를 하나라도 갖고 있지 않으면 학교에서 왕따가 될 정도로 인기가 많은 만화였죠. (당시 저는 캐나다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트랜스포머도 그랬지만 '지아이조' 또한 만화를 전혀 답습하고 있지 않습니다. 80년대 만화가 내다볼 수 있는 미래 기술과 현재의 표현 능력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어 그런 건지도 모르겠군요. 그럼에도 '지아이조'는 너무나 만화같은 영화가 되었습니다. 대놓고 리얼리티를 무시하는 내용 전개와 컴퓨터 그래픽이 차라리 그냥 만화를 본다는 마음을 갖도록 하였으니까요.
어린 시절에 보던 만화에 대한 향수도 한 몫을 했지만 이병헌의 출연이 결정적으로 이 영화를 보도록 한 계기가 됐습니다. 이병헌이 연기한 '스톰 쉐도우'는 비중이 작은 케릭터는 아니었지만 어딘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헐리우드 영화 속의 비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과거 '스피드 레이서'와 곧 개봉할 '닌자 어세신'에 출연한 가수 비와 비교를 해볼 수도 있겠죠. '닌자 어세신'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스피드 레이서'를 본 관객들의 비에 대한 반응은 별로 비중있는 역할이 아니었는 데 반해 큰 기대를 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비교했을 때 '지아이조'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스톰 쉐도우의 역할 비중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있습니다. 일단 이병헌의 별로 많지 않은 대사가 (대부분 영어 단문 이었고 복문의 대사는 극히 드물었다.) 오버더빙으로 처리된 것 같다는 점도 그렇고, 액션 장면이 많을 뿐 전체 스토리 빌딩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등장인물입니다. 결말에 스네이크 아이와의 대결에서 죽는 것처럼 처리됐지만 원작 만화에서의 스톰 쉐도우 캐릭터가 꽤 자주 등장한다는 걸 생각했을 때, 비단 영화가 만화를 답습하지 않고 있다고 앞서 이야기했지만, 다음편에서 과연 이병헌이 스톰 쉐도우로 다시 등장하게 될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굳이 오버더빙까지 해줘야 하고 스토리빌딩에 참여하지 못하는 케릭터를 위해 죽은 것처럼 처리된 등장인물을 또다시 살려내려 할까요?
그의 역할에 대한 아쉬움은 비중이 있는 듯 기실 별로 없다는 것 말고 한가지 더 있습니다. 가수 비의 예를 다시 들어보면, 비의 경우 한국영화에서 이렇다할 작품이 없는 배우로 한국영화든 미국영화든 그냥 그 자체로 판단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병헌의 경우 이미 한국영화에서 자릴 잡은 배우로써 좋은 평을 받은 작품들도 여럿 있기 때문에 헐리우드 영화에 출연해서 비중을 얼마나 차지하고 있느냐를 따지고 있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입니다. 비는 한국영화에서 용머리가 된 적 없으니 헐리우드 영화에서 뱀꼬리가 되어도 그 출연한 것 자체에 의미를 두면 되겠죠. 그러나 이병헌의 경우 용머리의 모습과 비교했을 때 뱀꼬리의 모습이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중견배우입니다.
악역이라도 앞으로의 '지아이조' 시리즈에서 계속 출연한다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 마냥 좋겠습니다만, 뱀꼬리 하느라 가랑이 찢어지느니 한국영화에서 용머리 되면 좋겠습니다. 간신히 본선 진출하는 거에 의미두고서 그 많은 응원을 불러내는 월드컵 대표팀 응원보다 국내 K 리크 응원하는 것이 축구발전이나 선수 개개인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네요.
이 글은 지난 6월 23일 LIG ArtHall 에서 펼쳐진 재즈피플 2009 리더스 폴 수상자들의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8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LIG ArtHall 2009년 6월 23일 2009 리더스 폴 배장은(p), 최은창(b), 크리스 바가(d), 손성제(s), 최우준(g)
프로그램을 받아든 순간 13곡이나 되는 곡 목록을 보면서 이날 공연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그림이 그려졌다. 시작되지도 않은 공연을 곡의 양으로 판단하는 것이 섣부른 생각이긴 하다. 하지만 연주되는 곡이 많다고 해서 마냥 좋은 공연이 될 리는 없고, 조용필이나 팻 메시니처럼 세 시간쯤 내리 음악을 쏟아내며 청중을 즐거움에 지치게 만드는 경우를 아무 때나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이날의 연주자들이 서로 여러 차례 협연을 해왔겠지만, 리더스 폴 공연을 위해 일시적으로 모여 “V.S.O.P.”를 펼치는 올스타밴드인 걸 생각했을 때 기대 반 의심 반의 마음일 수밖에 없었다.
라이징 스타 2009의 오프닝 무대로 공연이 시작됐다. 지난 6월의 “퓨처스 앙상블 2009” 공연을 통해 워낙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연주자들이어서 연주를 들으며 공연 시작 전의 우려를 잊어버린 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로 연주된 ‘Autumn Leaves’에서 트럼펫과 색소폰이 주고받으며 진행되는 리듬의 변화와, 템포를 바꿔가며 진행되는 피아노 변주들은 스탠더드 곡들이 수도 없이 곱씹어 연주되어도 재즈를 재즈답게 즐길 수 있게 하는 그들만의 모습이었다. 좀 생뚱한 비유지만 할 일 없는 주말에 만화책 수십 권을 옆에 쌓아놓고 누운 채 그 첫 권을 펼쳤을 때의 기분이랄까. 앞으로 즐길 거리가 얼마든지 많다는 풍족한 인상을 주는 오프닝이었다.
2009 리더스 폴 수상자들의 첫 곡은 칙 코리아의 ‘Windows'였다. 배장은의 최근 음반 <Go>의 첫 곡이기도 한데, 음반에서는 들을 수 없는 피아노 인트로가 있었다. 무대에 홀로 오른 배장은의 인트로는 그녀가 어떻게 다른지를 말할 수 있을만한 연주였다. 그런 연주에 청중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를 보인 최은창과 크리스 바가는 인트로가 끝날 무렵 무대에 등장했고, 이내 트리오 편성으로 곡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곡이 끝날 무렵, 십여 곡의 곡목들을 보며 내용면에서 허술한 공연이 될지 모르겠다는 단편적인 우려가 다시 떠올랐다. 성급하게 마무리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더 즐길 게 나와 줘야 할 것 같은 아쉬움은 이어서 연주된 ‘Propose’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최우준의 기타는 다시 한 번 절정을 향해 치달아야 한다고 느낀 순간 끝나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더 듣고 싶은 욕심 때문에 그렇게 들렸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곡 진행상의 아쉬움을 제쳐놓고 생각해도, 이날 연주된 곡들은 대개 연주자를 소개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었으며, 진면목을 보여주는 연주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연주자 개개인에 대해서는 인상 깊은 요소들이 곳곳에서 보이기는 했다. ‘Chicken’을 연주하면서 기타 현 위에서 핑거링, 피킹, 스트로킹 같은 통상적인 주법 말고도 비비고 때리고 긁기도 하는 최우준의 연주는 그가 기타라는 도구적인 틀을 넘어섰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마치 ‘식사’라는 곡을 연주할 때마다 하는 ‘밥 숟가락질’을 우리가 주법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건 기타를 긁고 때리는 연주 자체가 특이하게 보일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Moody's Mood For Love’에서 화려하면서도 다 보이지 않고 약간은 감춰진 듯한 배장은의 인트로는 또 한 번의 감명을 주었다. 콘트라베이스건 일렉트릭 베이스건 균형 있게 좋은 연주를 들려주는 최은창은 공연 내내 여러 연주자들의 다양한 곡에서 그 자신의 역할을 말해주는 연주를 펼쳤다. 자신의 곡 ‘Carla’를 연주하기에 앞서 그는 한국의 재즈 무대에서 여러 연주자들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평가로 이 자리에 선 것이며, 그것이 스스로에게도 기분 좋은 일임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리더스 폴 2009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강대관 선생은 대한민국 재즈 1세대로서, 손자뻘 되는 3세대 연주자들과 ‘Summertime’을 협연했다. 마치 마일즈 데이비스가 초기 재즈 록 시절에 선보였던 스타일을 연상시킨 이 연주는 상대적으로 짧은 듯했지만 이날 공연에서 선보인 곡들 중에서 그 의미상 가장 흐뭇하고 멋진 순간이었다.
필자가 꾸준히 응원하는 종목은 재즈밖에 없다. 그러기에 스포츠 팬들이 농구나 야구의 올스타전을 구경 가는 느낌을 약간은 갖고 있었다. 그런데 리더스 폴이라는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이날의 공연을 마련한 재즈 팬들은, 결국 이 연주자들이 무언가 진한 승부를 내길 원했던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경기 내용이 대체로 싱거웠다는 이야길 하고 있기에 스스로 재즈 팬이 맞는지 헷갈려하고 있기도 하다. 또 모두 일어나서 응원을 하고 있을 때 팔짱 끼고 앉아서 분위기 망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올스타전을 즐기는 법, 그건 흥겨운 축제를 즐기는 기분과 같다는 걸 안다. 하지만 팽팽하게 전개되는 긴장감은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요구할 수 있는 재즈 팬의 권리다. 마음만 먹었으면 그걸 충분히 해낼 연주자들이었다는 걸 잘 알기에 하는 소리다.
마이클잭슨의 발견은 다락방에서 찾아낸 잡동사니 같은 거였습니다. 그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아버지의 서재에 가면 오래된 잡동사니들이 많이 쌓여있어서 당신의 옛날 물건들을 뒤지며 놀곤 했었죠. 그러다가 오래된 카세트테이프(MC)들을 발견했을 땐 그 안에 뭐가 들어있나 재생해보기도 했는데 저의 더 어릴 적 목소리 같은 것들이 녹음되어있었어요. (요즘은 캠코더로 아이들을 녹화하지만 그시절엔 카세트로 아이들은 녹음했나보죠.)
그때 그 MC들 사이에서 마이클잭슨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녹색 라벨이 붙어있던 MC 는 해적판 짬뽕이었는데, 주로 엘범 <Thriller> 의 곡들 위주였죠. 그리고 얼마후 저는 제 인생 최초로 용돈으로 엘범을 사게 됩니다. 그게 바로 <BAD> 였어요. (이때 산 MC 는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팝송이라고는 누나가 듣던 Whitney Huston 이랑 초코렛 광고와 영웅본색으로 유명했던 장국영 말고는 몰랐던 제게 엄청난 충격이었죠.
마침 6학년이 되면서 아버지께서 일본에 다녀오시면서 AIWA 카세트 재생기를 사다주셨고 그때부터 아주 불나기 시작했죠.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초등학교 수학여행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BAD> 를 듣던 기억입니다. 돌아올 때 한밤중에 비가 왔는데 제가 젤 좋아하는 'Man in the mirror' 라는 곡이 틀어져나오던 창밖 도로 풍경이 아직도 보이는 것만 같아요.
이젠 상당히 많아진 컬렉션들의 일부로 MC 가 아닌 LP 와 CD 로도 마이클 잭슨의 음반들을 가지고 있어서 몇 년에 한 번 들을까 말까에 자켓 사진이 눈에 스칠 일도 드뭅니다. 또 제가 그의 내한공연 때 애써 찾아갔던 것도 아니고 광적으로 그를 좋아해서 프로필을 외고 다니거나 자료를 수집하거나 한 적도 없었죠. 그렇지만 마이클 잭슨이 단지 컬렉션의 최초 시작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란 것, 그건 바로 어제 마이클 잭슨이 죽기 전에도 너무 진하게 알고 있던 사실이에요.
‘퓨처스 앙상블(Future's Ensemble) 2009’의 무대가 마련된 공연 당일 EBS 방송국 앞의 매봉역 지하철 역사에는 거리 연주자들의 색소폰 연주가 벌어지고 있었다. 연주할 수 있는 무대로 행인 앞인들 마다하지 않는 즐거운 아마추어들이었지만, 그들 앞에 멈춰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 전 EBS의 <다큐프라임>은 사람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어떤 착각을 불러일으키는지를 다뤘다. 사람들의 착각을 보여주기 위한 여러 가지 실험을 했는데, 연주자의 학력이나 경력에 따라서 연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평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준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쉽게 예상되는 결과를 낸 그 실험은 국내 콩쿨 우승경력의 바이올린 연주자를 통해 이뤄졌는데, 자연스럽게 한국의 재즈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한국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 중인 재즈 연주자들 중 유학 경험이 없는 연주자가 얼마나 있던가. 그러나 그들의 프로필에 흔하게 등장하는 유학 경험이나 유명 연주자와의 협연 경험들이 한국의 재즈 팬들에게 어떤 작용을 기대한 결과물이라면 상당한 오해일 듯하다. 그들의 학력과 경력은 대중들에게 잘 모르는 연주자의 음반을 고를 때 비교적 친숙한 연주인과 협연한 음반부터 접해보는 정도의 참고적 의미 이상은 아닐 거라고 본다. 한국 재즈에 고정관념과 편견이 작용한다면 그건 평가절하의 결과를 보이는 경우가 더 많을 테고, 다행히(?) 학력이나 경력으로 포장된 채 그들이 세계적인 연주자라는 대중의 착각을 불러일으키진 않는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재즈 연주자들에게 유학경력이 흔하고 그것도 조기유학이 아닌 늑장유학인 경우가 많다는 건 단순히 한국에서 재즈를 배울 수 있는 기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으리라는 생각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날 만난 여섯 연주자들에 대한 생뚱맞은 반가움은 거기서 비롯됐다. 별로 접해보지 못했던 (유학 경력 없는) 이력의 20대 젊은 연주자들이 그렇게나 재즈를 훌륭하게 그리고 재미나게 연주하는 모습이 신기했던 거다. 기실 이런 젊은 연주자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는데 단지 필자의 경험이 미치지 못한 탓이라면 더 반가운 일이다. 솔직히 이날의 공연에 앞서 ‘실용음악’이란 이름으로 재즈를 포괄하고 있는 학과나 학원에서 공부한 연주자들의 공연을 떠올렸었다. 그런데 퓨처스 앙상블에 대한 의아함은 그들의 연주가 실용음악이 아닌 재즈였기 때문이었다. 첫 곡으로 연주된 섹스텟 편성의 ‘Rising Starts’를 들을 때부터 그랬는데, 이 곡은 그날 연주된 곡들이 예상했던 모습과 전혀 다를 것이란 걸 눈치 채게 했다. 그러한 시작부터 나머지 공연 내내 스윙과 비밥을 기반으로 한 20대의 연주자들은 내게 낯선 경험이었다. 그러고 보면 재즈를 담고 있는 것처럼 얘기되는 ‘실용음악’이 사실 얼마나 재즈와 거리가 먼 표현이었던가.
여섯 명의 출연자가 서로를 소개해가며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형태로 진행된 이날 공연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연주자는 피아니스트 윤석철이었다. 세 번째로 연주된 윤석철 작곡의 ‘Low Passion’에서 무거운 톤으로 철골 같이 심어지는 반복적인 리듬연주와 몰아치는 솔로는 남은 공연 내내 그를 주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찌나 인상 깊었던지 뒤이어진 허소영의 ‘Moody's Mood For Love’의 인트로까지 전 곡에서의 에너지가 이어지는 듯 했고 후반부의 ‘거울’이나 ‘Hope’까지 그의 거침없는 솔로는 계속 됐다. 전체 곡 분위기를 미리 다 보여주는 것 같아서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던 ‘Moody's Mood For Love'의 피아노 인트로는 허소영이 곧바로 노래로 이어받기 아쉽게 만들었던가 보다. 그런데 노래를 시작하기 전 그런 윤석철에게 박수를 보내는 여유를 보여준 허소영의 노래 또한 정말 대단했다. 제임스 무디(James Moody)의 솔로에 가사를 붙여 부른 그 곡은 그녀의 첫 앨범의 컨셉트를 대변하면서 블루지한 목소리와 함께 범상치 않은 신인임을 직감케 했다.
연주된 곡들은 대체로 직관적으로 이해되어 그 자리에서 즐길 수 있었던 곡들이었고, 반복적인 멜로디를 아름답게 발전시켜나가는 신명섭의 ‘Hope’ 같은 곡은 특히 더 그랬다. 반면 배선용의 ‘거울’은 라이브라는 일회성이 아리송함을 남기는 곱씹어 보고픈 곡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곡에서 피아노에게 멋진 공간을 남겨주면서 스스로는 전면에서 내지르지 않는 모습이 의외였다. 다른 곡들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절제된 건지 혹은 소극적인 모습인지 모를 일이지만 확실히 앞으로 더 기대해 볼 연주자였다. 공연 다음날 낯선 곡 하나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그 곡은 한웅원의 ‘Strawberry Princess’였다. 정작 공연장에서는 좋은 리듬감 말고 특별한 감상 포인트를 잡지 못했었지만 역시 탄탄한 기본은 튀지 않고도 오랜 인상을 남긴다. 정상이는 자신의 곡 ‘May Dance’에서 주제를 담은 인트로 뿐 아니라 전곡에 걸쳐 범상치 않은 베이스 라인을 들려줬다.
퓨처스 앙상블과 같은 젊은 신인 연주자들은 어떤 해답과도 같은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근래 들어 느끼고 있는 한국 재즈 연주자들에 대한 신선한 즐거움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하는 의문이 들 무렵에 이들의 무대를 통해 적절한 답을 만난 셈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필자 개인에게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닐 거다. 과거 국내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유학을 떠나 재즈를 배웠던 세대들과는 달리 지금은 국내에서도 재즈를 공부할 기반이 전보다 더 많이 갖춰져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알게 한다. 더불어 어릴 때부터 재즈를 진지하게 듣고 연주하길 즐기던 스윙키즈들이 전보다 나아진 기반 위에서 재즈를 수련하며 앞으로도 재즈 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무럭무럭 자라나주고 있지 않을까. 이건 분명 즐겁고 설레는 기대감이다.
지난주 방영된 23번째 에피소드에서 드디어, 드디어 커디와, 드디어 커디와 하우스가, 드디어 커디와 하우스가 러브라인을 형성했더랬습니다. 대체 어떻게 흘러가려고 이러나 싶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시즌5를 약간 우습게 연출되는 헤피엔딩으로 끝내려는 게 아닐까하는 우려도 됐었지요.
그러나 역시 Dr. 하우스는 최고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배경음악과 케릭터 설정도 너무나 훌륭하지만) 만들어진 최고의 드라마입니다. 최근 방영된 에피소드 24를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커디와 하우스의 러브씬은 에피소드 24에서 대반전으로 이어집니다.영화 "Usual Suspect" 를 보고 극장 밖으로 나온 사람마냥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라고 외치고 싶지만 스포일러는 참아야겠지요. 대신 한가지만 이야기하죠. 커디가 하우스의 집에 놓고간 립스틱을 주목하세요.
그나저나 시즌5까지 꾸준히 봐왔던 메디컬 드라마 House 가 종영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소재로 사용되는 병명들이 귀에 익으면서 소재의 진부함도 느꼈던 게 사실이지만 24번째 마지막 에피소드는 드라마 House 의 종영을, 정말 그렇게 된다면 너무나 아쉽게 만드는 Best of the best 가 될 겁니다.
영화 Vicky Cristina Barcelona 를 봤습니다. 영화에 플롯이 없어서 재밌다고는 못하겠지만 스페인 바로셀로나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통해서 여행의 추억을 되새길 수도 있어서 좋았고 또 낯익은 스페인 기타곡들이 배경음악으로 자주 나와서 몰입이 더 쉬웠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주제곡 말고 스페인의 대표적인 클래식기타 작곡가 Issac Albeniz 의 Granada 라는 곡이 자주 나옵니다. 이 곡이 틀어져 나오는 한 장면을(아래) 보면서 두번째 개인 콘서트의 테마를 잡았네요.
스페인의 더위 속에서 한밤에 시원해보이는 야외 무대에서 즐기는 콘서트. 실제 이런 게 그들의 생활문화 속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도 해봄직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장면을 통해서 비슷한 영화 하나가 더 떠올랐는데 역시 스페인을 무대로 한 Habla con ella (영제: Talk to her) 입니다. 이영화는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게 아니라 그냥 스페인 영화고 영화 속에 위에서와 비슷한 공연 장면이 있었죠. 두 장면의 공통점이라면 영화 속에 삽입된 야외 콘서트라는 것과 각각의 남자 주인공이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는 것, 그리고 그 눈물을 본 여자 주인공이 남자에게 끌리게 된다는 점이죠.
제가 생각해낸 야외 무대는 강원도 안흥에 있는 친구의 별장입니다. 안흥찐빵으로 유명한 그곳에 두 번 갔었는데, 아주 한적한 곳에 나무로 지어진 별장이 있고 그 앞에 나무 데크 발코니와 잔디밭이 있죠. 그 옆으로는 안흥천이 흘르는 소리가 들리는 무척 아
름다운 곳입니다. 여름밤이 시원해질 무렵에 나무 발코니에 맨발로 앉거나 누운 채로 스페니 기타 콘서트, 모양이 꽤 괜찮을 것 같아요. 작은 촛불들을 곳곳에 켜 놓고서 말이죠.
친구가 허락해줄런지 모르겠지만 지난번 그곳에 갔을 때 그친구가 그곳에서 공연을 해달라고 했던 바, 장소 협찬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네요. 단지 저 곳이 교통이 좀 불편해서 자가운전 아니고서는 사람들을 초대하기가 마땅찮은 것과 하루 자고 가야 하는데 방이 둘 뿐이어서 남녀를 나누거나 거실에서 혼숙을 해야한다는 점. 젊은 사람들끼린 혼숙도 상관 없겠지만 제 손님은 나이대가 다양해서 말이죠.
시즌 1부터 꾸준히 즐겨보던 미국드라마 하우스House의 등장인물 커트너가 며칠전 방송된 시즌5 스무번째 에피소드에서 갑짜기 자살했다. 로렌스 커트너의 케릭터는 낙천적인 성격에 천재는 아니지만 재치가 넘치고 그러면서 엉뚱한 면도 많아서, 냉소적이고 천재적인 Dr. 하우스(휴 로리)와 상충되는 이미지로 드라마의 재미를 더해왔다. 그런 그가 너무 갑짝스럽게,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을 해버린 거다. 아무런 앞뒤 개연성 없는 사건도 황당했지만, 앞으로 커트너가 없는 하우스를 본다는 것이 섭섭해졌다.
'Dr.하우스'를 연기한 휴 로리, 그리고 로렌스 커트너 역의 칼 펜과 간접관계된 (정말) 조그만 사연 하나가 있는데, 작년에 쿠바를 여행할 때 만나서 1주일 정도를 함께 다녔던 루이스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루이스는 Dr.하우스와 반대로 무척 타인에게 너그러운 성격이긴 했지만 외모는 어딘지 모르게 Dr.하우스를 연상시켰고 그래서 처음부터 낯설지 않았던 것 같다. 그와함께 동쪽으로 이동하던 중 그는 트리니닷에서 다시 서쪽으로 돌아갔고, 나는 동쪽 끝까지 가겠다면서 관타나모Guantanamo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런 내게 그가 물었다.
"Do you think that is worth heading to Guantanamo?"
사실 그냥 경험해보고 싶다는 이유 말고는 특별한 동기는 없었는데 그에게는 뭔가 그럴듯한 이유를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 '관타나모 가는 길' (The road to Guantanamo) 핑계를 댔더랬다. 꽤 호평을 받은 영화였지만 대중적이진 않았던 이 영화를 역시 그는 모르는 듯 했고, 그대신 그가 '관타나모'를 키워드로 생각해낸 영화 하나를 말해준 게 있는 데,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찾아 보게 됐다. '설마 내가 이 영화를 동기로 관타나모에 간다고 했을 꺼라고 그가 생각했을까!' 싶을만큼 유치한 영화였는데, 'Harold & Kumar Escape from Guantanamo Bay' 라는 2008년 개봉영화로 루이스가 내게 이야기해준 게 2008년 7월이었으니까 당시엔 최신영화였겠다.
2004년에 'Harold and Kumar Go to White Castle' 을 시작으로 헤롤드와 쿠마 시리즈 2편 격인 이영화는 관타나모, 마리화나, 부시 대통령 등, 미국이 갖은 말하자면 어떤 모순점 같은 소재들을 역어 만든 풍자 코미디물인데, 정말 지저분하고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 여자들의 헤어누드가 한 두명이 아닌 단체로 나오고, 남자 성기도 클로즈업 되어 나온다. 그렇다고 그 장면이 딱히 성적으로 묘사된 분위기는 아니어서 참 코메디 스럽긴 했다. 아직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종류의 코메디가 아니다보니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거지 미국에서는 익숙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닥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끝가지 봐야했던 이유가 루이스 생각이 나서만은 아니었다. 이 영화에서 저질스런 역할은 전부 도맡아하는 쿠마 파텔 역으로 나오는 배우가 바로 드라마 하우스의 커트너로 나와서 익숙해진 칼 펜이었기 때문이다. '커트너'와 '쿠마' 사이의 케릭터 갭이란 것은 너무나 놀라워서, 우리나라 TV 드라마 배우가 포르노 영화에도 나온다고 상상하면 그 놀라움이 쉽게 전달될 것 같다.
왼쪽부터, 한국계 미국인 배우 존 조(헤롤드 역), 칼 펜(쿠마 역), 그리고 결코 낯설지 않은 깜짝출연자, 천재소년 두기!!
정리하자면 루이스 > 하우스 > 관타나모 > 쿠마 > 커트너 > 하우스 로 연결지어진 여담이었는데, 그러니 이제 다시 하우스 이야기로 돌아가도 되겠네.
오늘 퇴근하면서 라디오방송을 듣다가 주파수도 기억나지 않을만큼 우연히 듣게 된 영어 방송이 있다. 저녁 7시 좀 넘은 시간이었는 데 두 명의 미국인이(아마 미국인 맞을 꺼다) 로켓 발사 같은 최근에 이슈되는 뉴스들을 다루는 AFKN 비슷한 방송의 한 프로그램이었다. 듣다보니 그들이 커트너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 내막에는 배우 칼 펜이 오바마 선거운동에서 젊은 유권자들을 모으는 주요 역할을 했었기 때문에 결국 백악관에 입성하게 되어 드라마에서 하차하게 된 사연이 있었다는 거다. 영화 속에서 그는 비행기 안에서도 대마초를 피울만큼 마리화나 메니아에다가 테러범으로 오해받는 행동도 하는 사람이지만, 실제의 칼 펜은 전혀 다른 사회 모범적인 인간이란다. 영화속 이미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내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상당한 인기를 얻은 그를 오바마는 선거 운동에 요긴하게 이용했던 모양이다. 일단 유색인종에 종교적 다양성까지 포용할 수 있고, 또 영화 속의 반사회적인(?) 이미지가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돌려 생각하면서 반대급부를 노린 전략일 수 있을 것 같다.
여하튼 결국 그는 Dr.House 를 떠나 White House 로 가버렸다. 우리나라같으면 저런 발탁이 이뤄질 수 있을까도 생각해본다. 아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애로 배우를 TV에 캐스팅하는 것만큼 벌어지지 않을 일이지 싶다. (그러고보니 아주 없진 않구나.)
스러져있는 저 몸은 칼 펜의 것이 아니겠죠.
그런 사정으로 에피소드#20에서는 커트너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쓰러친 장면으로 딱 한 장면 출연했는데, 그것도 얼굴은 나오지 않고 팔꿈치 이하 몸밖에 안 보인 걸로 봐서 커트너는 20편에 출연하지 않은 거다. 20편에 출연해서 자기 역할을 정리하지도 못했으니, 자살 스토리가 얼마나 빨리 급조된 건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래도 드라마 하우스는 참 센스 있는 것이, 아직 시청자들이 커트너의 죽음을 모르는 시작부분 부터 마지막 장례식 장면까지 어두운 조명으로 일관해서 평소와는 다르게 매우 음울한 분위기를 연출하더라. 게다가 장례식을 인도식이라거나 이슬람식이라고 하기도 뭐하게 약간 오묘하게 연출해냈는데, 출연자들이 단체로 모여서서 그를 애도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은 단순히 커트너를 애도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로 비춰보이기도 한다.
이글은 피아니스트 배장은과 이선지가 각자의 앨범 <Go>와 <The Swimmer>를 주제로 펼친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4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배장은 쿼텟 2009년 3월 3일 at EBS SPACE
이선지 쿼텟 2009년 3월 19일 at EBS SPACE
'가요'라는 말을 '대중적 음악'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썼을 때 그것은 팝, 록, 재즈 등과 별개의 분류일 수 없다. 우리는 이 말을 '국산음악' 또는 '한국어 가사가 있는 노래'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유통 상의 분류가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예를 들어 음반가게들은 국산음악을 찾기 편하도록 별도로 구분해놓았고, 라디오방송도 가요프로와 팝음악프로가 따로 있는 식이다. 어쨌든 '가요'라는 개념이 '음악'을 즐기는 이에게 존재하진 않기 때문에, 물리적인 거리가 있을지라도 음반가게에서 카드를 긁을 결심이 서는 데는 고려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실 이건 그것들 간의 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재즈에서는 그 전제가 약간 아리송하다. '한국 재즈'라는 단서가 붙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것을 선택함에 있어서 어떤 망설임이 일기도 하며, 상대적인 우위에 의해 밀려나기도 한다. 그래서 최근에 접한 서너 장의 한국 재즈 음반들이 더 크게 와 닿았는지도 모른겠다. 그 중 배장은이 그렉 오스비 등의 해외 연주자들과 작업한 <Go>와, 처음에는 갸우뚱해가며 듣다가 두 번째에서 더 맛을 느꼈던 이선지의 데뷔작 <The Swimmer>은 공연으로도 접할 수 있었기에 만족감이 더 컸다.
음반도 마찬가지지만, 이 둘의 공연에서 크게 기여한 관악 연주자들이 있었다. 배장은 쿼텟의 첫 곡 'Go'가 그렉 오스비(as)의 블로잉으로 시작됐을 때 이런 톤을 공연장에서 들은 게 언제였나 싶을 만큼 생경했는데, 일단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이었고 또 세계적 연주자들의 무대일지라도 언제나 수백 이상의 관객을 수용하는 큰 무대였기에 느껴볼 수 없었던 탓일 거다. 이런 느낌은 이선지 쿼텟의 랠프 알레시(t)에게서도 받았는데, 그의 톤은 음계로 들려오는 것 훨씬 이상이었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음반의 녹음보다 창조적인 솔로를 연주한 배장은은 재미있는 공연을 만들었다. 'Giant Steps'는 느리지만 공간미가 돋보인 편곡이었고, 쿼텟으로 바꿔 편성한 '고향의 봄'의 경우 후반부의 인상적인 심벌 연주가 고향의 밤에 반짝이는 별을 연상시키며 한국적 정서와 잘 어우러지기도 했다. 이날 출연한 아담 텍세이라(d)와 저스틴 그레이(b)는 음반 작업을 함께한 연주자들이 아닌데다 무척 어려 보이는 외모가 관록의 그렉 오스비와 대비되어 연주 시작 전에는 약간의 걱정을 샀다. 그러나 우리가 흔하게 접하지 못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재기 발랄하게 활용한 그들이 공연의 재미를 더했음은 분명하다.
반면 이선지 쿼텟의 공연은 음반에 대한 만족도에 비해 약간 모자라지 않았나 싶다. 일단 연주 멤버의 변화가 아쉬움을 만든 것 같고, 일부 곡들에선 마무리가 흐지부지 되는 등 어색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연주도 들렸다. 그런가 하면 'On the Fly'에서 원곡의 피아노 왼손 프레이즈를 베이스 솔로 인트로로 활용했다가 다시 피아노가 이어받는 식의 흠미로운 편곡이 곳곳에서 보였다. 새로운 작곡인 'Fallen-Sun'의 경우 단순한 프레이즈들을 끈질기게 이어내면서 록 음악적인 몽환을 풍겼는데, 작곡가로서 일상의 모습들을 이미지화시키는 이선지의 역량을 보여주며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 또한 갖게 만들었다. 앵콜로 연주된 '가요'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은 무대 또는 재즈를 찾아온 관객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됐을 거다.
단지 재즈이기 때문이 아니라 뮤지션이라는 이유로 대중으로부터 선택 받을 가치를 만드는 한국 재즈 연주자들이 많아졌다. 배장은과 이선지의 경우 함께한 해외 연주자들의 역할도 컸던 게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의 좋은 작곡과 편곡이 바탕이 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한국 재즈'라는 단서는 뮤지션들의 역량에 대한 구분만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내한했던 한 피아노 트리오는 동네 슈퍼에 다녀오는 듯한 차림으로 무대에 서서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음악과 무성의해 보이는 연주를 펼쳤다. 그런 그들이 크나큰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로부터 기립박수까지 끌어낸 걸 보면, 한국 재즈라는 단서는 대중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이 글은 "재즈, 클래식을 품다" 여섯번째 마지막 공연인 '최고의 순간들'의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09년 2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EBS SPACE 2008년 12월 29일
클래식을 소재로 한 재즈의 변주들은 재즈의 대중화라는 이유를 상투적으로 보이게 할 만큼 지루하게 되풀이되어왔다. 하지만 그것들과 달리 EBS 스페이스가 기획한 "재즈, 클래식을 품다"는 확실히 재즈가 그 중심에 있었다. 말 그대로, "재즈가 클래식을 품었다." 그런 의미에 부응하듯 '해석'의 과제를 부여 받은 다섯 명의 피아니스트들은 이전과는 차별화된 성과를 보여줬다. 르네상스부터 현대음악에 이르는 테마들을 아우르며 3월부터 시작된 다섯 번의 공연에서, 연주자들끼리 서로를 의식한 듯한 어떤 긴장감이 감돌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각자의 무대에서 저마다 자존심을 걸고 최선을 다했기에 그들이 일궈낸 성과와 상호간의 경쟁이 "최고의 순간들"이란 무대에서 어떤 식으로 결말지어질지 기대하며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은 이지영 퀸텟의 'Jesus, Joy Of Man's Desiring'으로 시작됐다. 경건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으로 친숙한 바흐의 곡을 발랄함으로 윤색하여 '낯설게 하기'에 성공한 연주였다. 이어서 이지영-임미정의 듀엣으로 바흐의 'Orchestral Suite No.2' 중 'Polonaise'가 연주되었다. 장중한 분위기로 시작되는 'Polonaise'의 선율은 산뜻한 편곡으로 되살아났고, 깔끔한 마무리까지 이어지면서 앞으로 이어질 피아노 듀엣 연주들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렇게 빠른 템포와 발랄한 느낌의 편곡 다음에 이어진 임미정의 베토벤 '비창'은 흥분됐던 공연장 분위기를 정돈했다. 피아노 인트로와 색소폰 솔로까지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연주였는데, 특히 결말에서 일순간 꽃봉오리가 열리듯 피어오른 '비창'의 멜로디가 남은 감동을 자아내면서 앞서 펼쳐진 연주들도 필 듯 말 듯 참고 숨겨온 '비창'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미정은 '비창'의 주제 멜로디를 곡 후반에 배치했다.)
이후 등장한 송영주는 비제의 오페라 '진주잡이' 중 '신성한 사원에서'를 모던한 느낌의 여섯 박 편곡으로 들려줬다. 지난 9월에 쿼텟으로 연주된 곡이 트리오로 바뀌면서 조금 단조로워진 느낌은 종반부의 화려한 혼합연주 마무리로 해소되었다. 배장은과의 듀엣인 '나비부인' 중 '어느 갠 날'은 송영주-배장은이 번갈아 멜로디를 발전시켜나가는 편곡이 일품이었고 긴 연주 시간에도 반복적인 구성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오페라 중창곡을 트리오로 연주하고 아리아를 듀엣으로 연주했기에 두 곡의 편성을 서로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배장은에 의해 퀸텟 연주로 재창조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독주곡 '프렐류드 op.3 no.2'는 원곡의 무거운 분위기를 살리면서 라틴의 느낌이 더해졌고, 송준서와의 듀엣 순서에서는 조지 거쉬윈의 'It Ain't Necessarily So'를 베이스와 드럼과 함께한 독특한 구성으로 연주하여 공연에 다채로움을 더했다. 송준서는 거쉬윈에 이어서 프란시스 플랑의 '토카타'까지 원곡에 솔직한 편곡을 보여줬다. 인상 깊었던 건 그의 연주에서 약간의 광기어린 고집스러움을 느꼈던 것인데, 임달균의 색소폰 솔로 중에도 그는 자신의 연주에 한껏 몰입하고 있는 듯했다. 곧이어 휘몰아쳐 나오는 피아노 솔로로 연결되면서 그것은 이어달리기의 바통터치가 아닌 숨차게 달려온 러너의 라스트 스퍼트처럼 보였다.
준비된(?) 앵콜곡 'Rhapsody in Blue'를 들으면서 '최고의 순간들'이 갖는 여러 의미들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일련의 공연들이 통시적으로 잘 기획된 하나의 공연으로 훌륭하게 마무리 되는 순간이란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다섯 명의 피아니스트들은 모두 다른 무대를 꾸미면서도 서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경쟁을 펼쳐왔다. 그리고 이렇게 한 데 모여 공감대를 형성하는 듀엣까지 엮어내게 됐고, 종국에는 하나의 릴레이 연주로 대미를 장식하는 결말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우리가 다른 공연장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드라마틱함을 안겨줬다. 이렇게 긴 시간을 두고 유기적으로 이어진 훌륭한 기획공연을 꾸준히 현장에서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한 가지 욕심이라도 부린다면 "재즈, 클래식을 품다"가 음반 제작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전에 콘서트 계획에 대해 포스팅했던 대로 지난 12월20일에 저의 작은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제 주변 소중한 사람들을 모시면서 적잖은 입장료를 받았는데, 오신 분마다 선물을 쥐어주고 가셔서 입장료를 받은 저를 부끄럽게 했어요. 너무 감사한 분들 한 분씩 나열합니다.
은정이 누나와 항상 말로만 들었던 누나의 언니.
밤새 이야기하고도 모자른 영재와 그녀의 친구.
부산에서 올라와준 도협이와 2월7일 출산을 앞둔 경아씨.
누구에게나 편안한 박순탁씨와 그의 휘앙세.
많은 준비와 배려로 무사히 마치게 도와준 table M 문은진씨.
photo from table-m
프로그램 (연주된 순서대로)
1. Prelude No.4 - H. Villa-Lobus
2. Tango en Skai - Roland Dyens
3. 어머니 - 이병우
4. Lettre a Jacques Cartier - Roland Dyens (보라색 편지 받을 사람을 위해)
4. Villancico de Navidad - A. B. Mangore (출산을 앞둔 경아씨를 위해)
5.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가스펠, 서윤일 편곡 (결혼을 앞둔 박순탁 커플을 위해)
6. Julia Florida - A. B. Mangore
7. Baden Jazz Suite 1악장 - Jiri Jirmal
8. Un Sueno en la Floresta - A. B. Mangore
9. Cavatina - Stanley Myers
10. White Christmas - 캐롤, Low Gek Siong 편곡
11. Felicidade - A. C. Jobim 곡, Roland Dyens 편곡